인권위 “당사자 동의 없는 경찰의 정신병력 유출은 인권 침해”
인권위 “당사자 동의 없는 경찰의 정신병력 유출은 인권 침해”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11.11 18: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찰이 사건 당사자의 승인 없이 그의 정신병력을 언론에 유출하는 행위는 ‘사생활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인권 침해라는 의견이다.

11일 인권위는 정신병력이 사건 관계자의 동의 없이 언론에 유출되는 것은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부득이하게 공개해야 하는 경우에도 내부 심의를 거치는 등 합당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경찰청장에게 표명했다.

인권위는 “건강에 관한 정보는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내밀한 정보로서 특별히 더 보호돼야 할 ‘민감 정보’에 해당한다”며 “본인 동의 없이 사건 관계자의 정신질환 정보를 언론에 유출하는 행위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6월 경찰은 ‘창년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계부 A(35) 씨와 친모 B(27) 씨와 관련된 정보를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B씨가 조현병 환자라는 것을 알렸다.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 부부에게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진정인은 경찰이 B씨의 정신질환 정보를 공개해 사생활을 침해했고 해당 질환이 범죄와 직접적 관계가 있다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줬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해당 진정이 본인이 낸 것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각하했다. 다만 인권위는 진정 처분과 관계없이 유사 사건 재발 방지 차원에서 의견을 밝히기로 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수사기관이 사건 관계자의 병력을 공개하는 경우는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나와 있는 ▲신속히 범인을 검거해야 하거나 유사 범죄 예방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로 인한 권익 침해를 회복시켜야 하는 경우 ▲공공의 안전을 위한 경우로 한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현재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과거에 정신질환을 앓았던 사실의 공개는 정신질환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과 사회 통념을 감안할 때 타인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정보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본인이 승낙한 범위를 벗어나 국가에 의해 임의적으로 자신의 병력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상황은 불쾌감 그 이상의 감정을 불러오기 충분하고 그러한 이유에서 헌법상 개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나아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와 관련된다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또 “지난 2016년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비(非)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율(1.4%)이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율(0.1%)보다 15배 가량 높다”며 “그럼에도 상당수 국민들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더 위험한 편’이라 느끼고 있고, 이는 우리 사회가 합리적 이유 없이 정신질환자 집단 전체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어 “특정집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개인의 사회적 고립을 강화해 사회통합을 저해할 뿐 아니라, 가족에게는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고통의 문제를, 당사자에게는 치료를 회피하게 하는 원인이 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