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아플 때, 입원시킬 수 있게 도와주세요. 뒷바라지는 가족이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아플 때, 입원시킬 수 있게 도와주세요. 뒷바라지는 가족이 하겠습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11.13 17: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성명...현실과 맞지 않는 제도로 고통
23년 돌본 딸 살해한 노모에 징역 4년...국가 책임 회피해와
국가가 아픈 이를 관리하지 못해 결국 가족 부담으로 돌아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돼야...정부 안일한 대처로 부작용 커져

조현병을 갖고 있는 딸을 23년간 돌보다가 살해한 60대 어머니에게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한 사건과 관련해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가족협회)가 정신장애인 돌봄의 국가책임제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3일 가족협회는 ‘조금만, 우리를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이 사건은) 또 한 번 그 가슴을 후벼 파는 통증과 저 일이 곧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고 토로했다.

앞서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9일 조현병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어머니 A씨(60대)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직장을 다니던 A씨는 딸이 중학생이던 시절 조현병과 양극성 정동장애를 갖게 되자 퇴직하고 딸을 돌보기 시작했다. A씨는 23년간 딸의 회복을 위해 병원 입원과 치료 등에 정성을 다 했다. 그렇지만 딸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A씨는 지난 5월 새벽 집에서 잠자던 딸을 살해했다. A씨는 범행 후 경찰에 자수했다. 이번 사건은 정신장애인을 둔 가족이 어떻게 심리적으로 황폐해져가는지를 알려줬고 정신장애인의 삶을 온전히 가족에게만 책임지게 하는 국가의 책임 회피에 대한 논란을 불러왔다.

가족협회는 “정신질환자 가족들의 경우 가장 극단적 선택까지 고려하게 만드는 경우는 이런 상황”이라며 “그냥 두면 곧 무슨 사고를 낼 것만 같은 환자의 정신병적 상태를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할 때가 ‘정말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아무리 가족이라도 견딜 수 없다’라고 느끼는 되는 순간”이라고 지적했다.

또 “아무리 자·타해 위험성이 높은 환자라도 국가가 이들에 대한 관리를 해 주지 못해 결국 가족들이 챙기고 돌봐야만 하는 현실에서 정작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가족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막상 일이 터지면 그 책임과 비난만 (가족이)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절대 정상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가족협회는 이 같은 모순적 현실을 만들어낸 것이 지난 2017년 5월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환자 인권과 치료의 자기결정권을 제고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당시 학계와 의료소비자들이 반대했다. 하지만 정부는 “취지가 좋으니 자잘한 부작용은 시행하면서 보완하면 된다”며 안이하게 인식했다는 지적이다.

가족협회는 “그 자잘한 부작용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 대표적 사례가 바로 지난해 일어났던 안인득 살인·방화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안인득 사건은 지난해 4월 경남 진주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거주민 안인득(43)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대피하던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친 사건이다. 당시 안인득은 조현병 증세에 시달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가족협회는 “우리나라 정신병원들은 소위 사회적 입원, 다른 대안이 없기에 병원을 집처럼 이용할 수밖에 없는 만성 정신질환자들의 불필요한 입원으로 넘쳐나고 있다”며 “정작 자·타해 위험이 급박한 환자가 발생하면 가족들은 입원 병상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7년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은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의 개정법으로 당시 정신장애인이 불법적으로 강제입원 당하는 등 당사자의 인권과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개정됐다. 하지만 정신과적 응급 상황에서도 타해의 위험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논란가 진행돼 왔다. 특히 가족간 재산 분쟁이 발생할 경우 가족 내 이해당사자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정신건강복지법 제정의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가족협회는 “환자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놓고 뭔가 나쁜 짓을 꾸미는 (가족의) 경우도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될까”라며 “그걸 막겠다고 만든 이 이상한 법은 거의 매일 전국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불필요한 비극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족협회는 “자식 병 시중을 위해 23년 동안 인생을 다 털어넣었던 어머니, 직장도 꿈도 희망도 다 팽개치고 오직 자식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어머니처럼 저희도 환자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만 딱 한 가지, 우리 아이가, 우리 형제자매가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 한사코 치료를 거부하며 전혀 조절되지 않는 행동증상을 보일 때, 저러다 곧 자신이 다치거나 누군가를 다치게 할 것 같을 때, 이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안 되겠나”라고 토로했다.

아울러 “그렇게만 해 주시면 나머지 뒷바라지는 저희 가족들이 다하겠다. 가족이나까, 절대로 외면할 수 없으니까”라며 “그러니 조금만, 아주 조금만 저희를 도와주면 안 되겠는가”라고 요청했다.

<성명서 전문>

지난 11월 9일, 언론에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 하나가 보도된 것을 보며 이미 매일매일 아픈 가슴을 부둥켜안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저희 가족들은 또 한 번 그 가슴을 후벼 파는 통증과 저 일이 곧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습니다.

바로 23년 동안 조현병을 앓던 딸을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늙은 어머니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딸이 중학생 때부터 조현병을 앓게 되자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23년 동안 딸을 입원시키거나 외래치료를 받게 하면서 지극정성으로 돌봐 왔지만, 딸 상태는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데 본인과 남편은 점차 노쇠해가는 상황에서 최근에는 딸이 약 복용을 거부하고 심한 욕설을 하면서 소란을 피우고 집을 나가는 등 통제 불능 상태를 보이자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 것입니다.

코로나에 경제위기까지 나라 전체가 다 어려운 상황이고, 매일 들려오는 아픈 사연들이 넘쳐나는 세상이긴 하지만, 정신질환자 가족들의 경우 가장 극단적 선택까지 고려하게 만드는 경우는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도저히 그냥 둘 수 없는, 그냥 두면 곧 무슨 사고를 낼 것만 같은 환자의 정신병적(psychotic) 상태를 그저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할 때가 ‘정말 여기까지다, 이 이상은 아무리 가족이라도 더 견딜 수 없다’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입니다.

입원이 싫으면 제발 외래에서 처방받아온 약, 그것도 본인이 안 가려해 보호자가 대신 가서 본인은 왜 안 데려왔냐는 의료진에게 사정사정해가며 받아 온 약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그마저도 다 거부하고 소위 자·타해 우려가 높은 증상들을 계속 보일 때 저희 가족들은 정말 모든 것을 다 끝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저희는 법률적 지식도 모자라고 인권문제에 대한 식견도 부족하여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입·퇴원 제도나 국가의 정신건강 정책을 학문적으로 비판할 능력은 안 됩니다. 뭔가 다 이유가 있겠죠.

그러나 아무리 자·타해 위험성이 높은 환자라도 국가나 사회가 이들에 대한 관리를 해주지 못해 결국은 가족들이 챙기고 돌봐야만 하는 우리 현실에서 정작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가족들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막상 일이 터지면 그 책임과 비난만 감수해야 하는 현재 상황은 절대 정상적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황당한 일들이 정신질환 진료현장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학계도 의료소비자도 다 반대했던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된 2017년 5월부터였습니다. 환자 인권과 치료 자기결정권을 제고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우리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현장의 지적이 빗발쳤음에도 워낙 취지가 좋으니 나머지 자잘한 부작용은 시행해가며 보완하면 될 거라는 정부 당국의 안일함으로 오늘까지 강행되어 오고 있는데 그 자잘한 부작용에 의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대표적 사례가 바로 지난해 일어났던 안인득 살인·방화 사건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꼭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 외에는 지역사회 재활 치료를 통해 사회 복귀를 촉진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내 정신보건역량을 강화하고 지나치게 과밀·포화된 우리나라 정신병상의 효율적 관리를 도모하겠다는 보건복지부 정책이 무색하게 여전히 우리나라 정신병원들은 소위 사회적 입원, 다른 대안이 없기에 병원을 집처럼 이용할 수밖에 없는 만성정신질환자들의 불필요한 입원으로 넘쳐나고 정작 자·타해 위험이 급박한 환자가 발생하면 가족들은 입원 병상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합니다.

바로 지난 11월 7일 새벽, 김해의 한 아파트 18층에서 50대 여자 조현병 환자가 투신하여 자살했는데, 이 환자는 꼭 4일 전인 11월 3일 새벽, 화장실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 시도를 하다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구조되었던 분입니다.

이분의 행동은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아파트 전체 화재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기에 출동한 경찰관은 김해 관내 5개 정신병원을 돌면서 어떻게든 환자를 법에 따른 응급입원 또는 행정입원을 시켜보려 했으나 병실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당했고 할 수 없이 집에서 방치되던 환자는 4일 후 투신을 해버린 것입니다.

경찰이 환자를 데리고 다녀도 이 정도라면 보호자의 경우는 어떠했겠습니까?

아주 극히 일부는 나쁜 가족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러지 않아도 될 환자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놓고 뭔가 나쁜 짓을 꾸미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드라마에서처럼. 그런데 그게 얼마나 될까요? 저희는 몇 %가 된다는 통계라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 통계를 내기도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걸 막겠다고 만든 이 이상한 법은 거의 매일 전국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불필요한 비극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런 몇몇 나쁜 가족들은 이미 있는 형법으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한데 말입니다

저희 대한정신장애인 가족협회는 간곡히 호소합니다. 정부에 호소하고, 국회에 호소하고, 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싸운다고 하시는 분들, 불합리하고 모순된 현실을 바로 잡겠다고 하시는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치료받아야 할 병, 그것도 자신과 타인에게 위험한 증상을 보이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제대로 치료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최선이라는 데 동의하시는 이성적인 국민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호소합니다.

자식 병시중을 위해 23년 동안 자신의 인생을 다 털어 넣었던 어머니, 직장도 꿈도 희망도 다 팽개치고 오직 자식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어머니처럼 저희도 환자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러니 다만 딱 한 가지, 우리 아이가, 우리 형제자매가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 한사코 치료를 거부하며 전혀 조절되지 않는 행동증상을 보일 때, 저러다 곧 자신이 다치거나 누군가를 다치게 할 것 같을 때, 이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도록만 도와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렇게만 해주시면 나머지 뒷바라지는 저희 가족들이 다하겠습니다. 끝까지, 손이 발이 되도록, 아니 그 발마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하겠습니다. 가족이니까, 절대로 외면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조금만, 아주 조금만 저희를 도와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20년 11월 13일

(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