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현병,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들...같은 경험 가진 가족들과 연대해야”
[기고] “조현병,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들...같은 경험 가진 가족들과 연대해야”
  • 장은하 멘탈헬스코리아 부대표
  • 승인 2020.11.10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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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헬스코리아 누리집 갈무리
멘탈헬스코리아 누리집 갈무리

“침묵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감추려 할수록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만 갔죠. 남들과 다른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설명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정말 도움이 되었을 거에요.”

조현병은 전세계적으로 인구의 1%라는 일정한 비율을 보이고 있는 정신건강 컨디션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2019년 통계층 중위 추계 인구 기준 5170만9098명으로 1%의 비율을 적용하면 우리나라에서 조현병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은 51만 명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현재 조현병으로 정신과적 진료를 받고 있는 인원은 12만 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가 조현병이 있을 거라 ‘추정’하고 있는 약 39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과 증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케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고통을 함께 견디며 생활하고 있는 그들의 가족들이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전체 암 유병율은 3.6%이다. 1%의 조현병 당사자와 그 가족까지 합하면 그 수는 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수보다 많을 것이다.

그러나 주위에서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듣고 보지만, 조현병을 겪는 당사자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는 그저 어떤 사건·사고가 있을 때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될 뿐이다. 그건 왜 그런 것일까?

조현병 컨디션을 가진 사람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은 고통을 함께 지켜보며 경험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와는 또 다른 종류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가족, 지켜주지 못했다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커져

더 이상 가족으로서의 특정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상실감과 절망감,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과 더불어 어떤 것이 최선인지 알 수 없는 혼란, 나와 나의 자녀에게도 유전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 등 이러한 정신적 고통은 한 개인이 온전한 삶을 누리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는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가족으로서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이러한 정신적 어려움은 조현병에 대한 지식과 대처법 등의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하여 반드시 잘 극복할 수 있는 것의 종류는 아닌 듯 하다.

조현병 환자의 아들 12명의 이야기를 담은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 (지음. 수잔L.나티엘) 책에 등장하는 크리스토퍼는 엄마의 조현병을 낫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그는 조현병에 대한 풍부한 의학적 지식을 갖추었고 훌륭한 약물 치료의 전문가가 되었지만 어머니를 낫게 하지 못했다는 극심한 죄책감과 자신도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멘탈헬스코리아는 조현병 패밀리 서포트 그룹을 9월부터 격주 토요일 시행하고 있다. 가운데 강화구 피어스페셜리스트(가운데)와 멘탈헬스코리아 최연우 대표(오른쪽) (c)멘탈헬스코리아 제공.
멘탈헬스코리아는 조현병 패밀리 서포트 그룹을 9월부터 격주 토요일 시행하고 있다. 가운데 강화구 피어스페셜리스트(가운데)와 멘탈헬스코리아 최연우 대표(오른쪽) (c)멘탈헬스코리아 제공.

그는 자신에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날까봐 대개 조현병이 발병하는 나이를 훨씬 지나서까지 항상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이처럼 조현병 가족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심리적 아노미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범죄를 저지른 ‘나쁜 사람’을 ‘정신병’이 있는 사람의 미친 짓이라 여기게 되면서 조현병 당사자 가족의 연대된 낙인과 수치심 역시 더욱 커져만 갔다.

지금껏 ‘조현병’에 대한 낙인과 죄책감, 두려움은 연대와 협력보다는 침묵과 무시, 회피와 방치를 낳았고, 그 결과 조현병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사회로부터, 또 다른 가족들로부터 고립되어 각자도생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각자 나름대로 최선의 길을 찾기 위해 공부를 하고, 정보를 찾고, ‘치료’라는 것들을 다양하게 시도하지만 정답을 모르는 채 어찌해야 할 바 모르는 혼란의 상태가 계속된다.

의사들은 조현병에 대해 마음이 아닌 뇌의 문제, 뇌 신경 회로의 이상 또는 신경전달물질의 문제가 생긴 ‘생물학적 이상’에 의한 질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뇌라는 장기의 이상을 객관적인 검사법을 통해 구체적인 증거나 근거를 제시하며 조현병 진단을 내리는 의사는 없다.

정신과 의사는 그들이 말하는 ‘고도로 복합적인 전문 행위’를 통해 조현병을 진단하게 된다. 전문의의 진단에도 “우리 아이는 조현병이 아닌 것 같아요”라고 의심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다.

의사들은 조현병을 약물을 통해 ‘치료’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약을 먹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거의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것을 두고 ‘치료’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지는 의문이다.

의사가 시키는대로 약을 먹고, 병원에 입원을 하는데도 건강해지기는커녕 더욱 더 확실한 조현병 환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 진단 이후 치료 과정에서 가족들은 더욱 큰 혼란을 경험한다.

조현병 증상이 있는 가족을 적극적으로 돕고 책임지기로 마음먹었다 하더라도 이처럼 증상의 원인과 진단의 과학적 근거, 완치 방법 등 뚜렷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은 세계에서 최선의 길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무엇이 그때의 상황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었을까?’

혼란 속에서 수십 년간 조현병 당사자의 가족으로 살아온 이들은 공통적으로 대답했다. 그것은 조현병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와 자유로운 대화, 그리고 이해를 바탕으로 한 연대였다.

우리 가족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알리기 싫어 침묵하거나 애써 외면했던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픔의 연대와 협력은 조현병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매우 필요한 사회적 처방이다. 조현병에 대한 개방적이고 이해가 높은 가족들 간의 연결은 정서적 지지와 회복 탄력성의 개발 더불어 재정적, 제도적, 치료적 측면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도움을 받고 줄 수 있는 기회를 확장한다.

가족 간의 서포트 그룹은 어떤 심리 서비스보다도 비용 대비 효과성에서 큰 장점을 지니며,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연결감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지난 9월, 정신건강 컨슈머 무브먼트(consumer movement·소비자운동) 단체인 멘탈헬스코리아에서는 조현병 컨디션을 가진 엄마와 함께 40년을 살아온 강화구 피어스페셜리스트를 필두로 조현병 패밀리 서포트 그룹을 시작했다.

“20대 때, 친구들과 TV를 보는데,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어요. 친구들은 ‘정신병은 100% 유전이다. 가족 중에 정신병이 있는 사람 있는지 잘 알아보고 결혼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랑은 절대 결혼하면 안 된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는 어디서도 내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구나 생각하게 되었죠.”

멘탈헬스코리아 피어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는 강화구 씨 (c)멘탈헬스코리아 제공.
멘탈헬스코리아 피어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는 강화구 씨 (c)멘탈헬스코리아 제공.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그녀 역시도 지금껏 조현병을 겪는 가족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저에게는 조현병을 겪고 있는 가족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힘든 나라가 바로 여기, 대한민국이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 20대 초반 조현병이 발병했다. 그녀가 엄마의 행동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유치원 때부터였다.

“유치원 무렵부터 저는 우리 엄마 안에 다른 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집에서 동생과 잘 놀고 있던 어느 날 엄마는 갑자기 불안해하며 6살, 3살이던 저와 동생에게 외투를 급하게 입혔죠. 누가 쫓아오니까 빨리 도망을 가야한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집에 가만히 있다가 누가 쫓아온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엄마 안의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한다고 느꼈어요.”

그 이후로 그녀의 엄마는 일 년에 한 번은 입원을 했고, 평상시에는 매일 새벽부터 아빠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소리를 질렀다. 종종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런 삶은 그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반복되었지만 가족, 친척 중 어느 누구도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떻게 엄마를 도와주어야 하는지 설명해준 사람은 없었다.

가족 간 서포트 그룹은 아픔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힘 가져

그녀는 성인이 된 이후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한 상황 속에서 혼자 외로운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10년 넘게 근무하였는데 다른 질환들과는 달리 조현병에 대한 제도적 지원은 거의 전무(全無)한 것을 보면서 더욱 큰 좌절감을 느꼈다.

그녀는 매일 어머니의 약을 챙기느라 단 하룻밤의 여행조차 떠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오후에 잠깐 산책과 활동을 봐주시고, 저녁 식사와 약을 챙겨주는 도움만 받아도 한결 삶이 나아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장기요양보험, 장애인 활동보조부터 요양기관, 요양원까지 여러 제도와 기관들을 알아보았지만 지금의 여러 제도들은 팔다리 멀쩡한 조현병 당사자에게 왜 지원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듯 했다. 왜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그녀는 ‘몇 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누군가 이 일들을 나서서 해주겠지, 정신질환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도 이렇게 힘들다는 것이 점차 알려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현실은 그대로였다.

‘누군가는 하겠지’ 했던 일이 ‘나라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조현병 가족들의 삶은 어떤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회가 그것을 알면 이리 두지는 않을 텐데,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아서 이렇게 제자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조현병 패밀리 서포트 그룹이 시작되었다.

멘탈헬스코리아의 조현병 패밀리 서포트 그룹은 조현병 증상을 겪고 있는 가족을 둔 모든 분들이 참가 대상이다. 이 날 모임에는 조현병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딸 20대 김율님이 함께 참여했다 (c)멘탈헬스코리아 제공.
멘탈헬스코리아의 조현병 패밀리 서포트 그룹은 조현병 증상을 겪고 있는 가족을 둔 모든 분들이 참가 대상이다. 이날 모임에는 조현병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딸 20대 김율님이 함께 참여했다 (c)멘탈헬스코리아

조현병이 있는 형을 둔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난 멀쩡해, 도움 따윈 필요 없어>의 저자 하비어 아마도르는 책의 도입부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모든 가족들이 질병에 대해 공부하고, 다른 가족들이 설립한 단체에 가입하기를 권한다. 이렇게 해야 할 중요한 이유는 당신이 병을 가진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하는 목적을 지지받고,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설립한 단체에 가입해 삶의 질 높여야

가족 중에 정신질환자가 있다는 사실에 수치심과 당혹감을 느끼는 일이 이런 단체 덕분에 줄어들 것이다. 수치심과 당혹감은 부적절한 감정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도우려는 노력을 방해하기만 할 것이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조현병을 앓는 형을 부끄러워했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은 나 같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였다.”

멘탈헬스코리아의 조현병 패밀리 서포트 그룹은 조현병 증상을 겪고 있는 가족을 둔 모든 분들이 참가 대상이다.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심리적 회복탄력성을 개발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부모님이 조현병을 겪고 있는 20~40대 젊은 청년들의 참여가 많다. 이 모임은 격주로 한 달에 두 번 토요일 오프라인 상에서 모임을 갖는다. 12주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가족들이 겪는 죄책감, 분노, 좌절감, 무력감, 희망 등 다양한 감정에 대해 나누고, 궁금한 정보에 대해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돌아오는 모임은 11월 14일(토)와 28일(토)이며,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약 두 시간 동안 진행된다. 참여 신청은 멘탈헬스코리아 홈페이지 및 아래 신청서 링크를 통해 할 수 있다.

[멘탈헬스코리아 조현병 패밀리 서포트 그룹 참여 신청하기] https://bit.ly/2Gnuw6i

글. 멘탈헬스코리아 부대표 장은하, 멘탈헬스코리아 피어스페셜리스트 강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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