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하 “마음이 아픈 청소년을 치료의 대상이 아닌 아픔의 경험 전문가로 관점을 전환해야”
장은하 “마음이 아픈 청소년을 치료의 대상이 아닌 아픔의 경험 전문가로 관점을 전환해야”
  • 장은하
  • 승인 2021.10.0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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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헬스코리아 부대표 장은하가 묻고 장은하가 답하다
책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원고 주도…“상처에서 아픔의 경험 전문가로”
두렵지만 정신과 편견에 맞서는 용기를 냈던 청소년들에 감사

청소년들의 마음의 상처와 회복, 아픔의 경험 전문가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가 최근 발간됐다. 청소년기를 그저 ‘질풍노도의 시절’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 안에는 수많은 상처가 혈흔처럼 번지기에 그 고통을 두고 단지 지나가버릴 하나의 에피소드로 청소년의 슬픔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 책의 집필을 이끈 장은하 멘탈헬스코리아 부대표는 책 출간에 맞춰 <마인드포스트>에 자신의 질문과 답을 실은 글을 보내왔다. 멘탈헬스코리아는 기울어진 정신건강 서비스의 소비자주의를 주창하는 민간단체다. 산하에 청소년의 아픔 경험 전문가들이 모인 피어 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 팀이 활동하고 있다.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는 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와 심리와 관련한 서적은 왕왕 보이는데요. 이번 책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는 어떤 점에서 ‘국내 최초’ 서적이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청소년들이 자해, 우울증, 자살 시도에 이르기까지 삶의 낭떠러지에 서 있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정작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몰랐기에 우리는 그들에 대해 더욱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비난하기도 했으며, 판단해버렸던 같습니다.

이 책에는 단순히 ‘우울증이어서’, ‘학교 폭력의 피해자라서’와 같이 하나의 단어로 규정됐던 아이들의 아픔 뒤에 숨겨진 아이들의 진짜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습니다. 어른들은 쉽게 마음 아픈 아이들을 향해 나약하고 문제아 취급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이’라며 손가락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과연 그 시작점이 어디였는지, 그리고 아이들이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오해와 잘못된 판단, 비난이 이루어졌는지를 낱낱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마음 아픈 청소년들을 향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를 대할 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청소년이 직접 목소리를 낸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들을 ‘피어 스페셜리스트 팀’이라 소개해 주셨어요. ‘피어 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는 어떤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인가요?

“알베르 카뮈의 말을 인용하고 싶어요. 카뮈는 ‘당신은 실험을 통해 경험을 획득할 수 없다. 당신은 경험을 만들어낼 수 없다. 당신은 반드시 그것을 겪어야만 알 수 있다’라고 말했죠.

피어 스페셜리스트는 자신의 아픔을 바탕으로 삶을 변화시켜 보았던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경험’이라고도 합니다. 이들은 정신건강, 심리적 외상 또는 약물 사용 등 정신건강 컨디션과 관련해 어려움을 가진 개인을 서포트(지지)합니다.

피어 스페셜리스트들의 주요 역할은 자신이 겪었던 정신적 아픔과 회복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을 바탕으로 비슷한 정신적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회복의 롤 모델 역할을 하며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북돋고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한 정신질환 조기 예방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과 증상을 조기에 발견해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설득하는 등의 활동을 수행합니다.”

-피어 스페셜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자기 낙인(Self-Stigma)에서 ‘아픔의 경험 전문가’, ‘청소년 정신건강 리더’로 자기 인식 관점에서의 완전한 관점의 혁신, 전환을 이루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청소년 정신질환 문제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요소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입니다. 이로 인해 정신질환의 조기 발견과 치료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멘탈헬스코리아는 마음이 아픈 청소년을 ‘관리 및 치료의 대상’에서 아픔을 경험하고 회복한 ‘아픔의 전문가’로 발상을 전환해 이들을 자살 예방과 조기 개입의 동료지원가로 활용할 수 있다 는 새로운 관점과 역할을 제시했습니다.

멘탈헬스코리아는 치료와 관리의 대상으로 여겼던 기존 방식에 대하여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근본적 전환)적 변화를 제시했으며 청소년들의 성장과 발전을 통해 이러한 접근 방식의 효과성에 대해 증명해나가고 있습니다.

멘탈헬스코리아를 통해 시작된 이 프로그램이 국내에 성공적으로 적용되고 확산된다면 청소년에게 정신과적 증상과 아픔은 더이상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문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고, 예방하고, 줄여나갈 수 있는 문제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사회적 인식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책 속에서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핵심 키워드로 ‘폭력’이 눈에 띄는데요. 폭력과 관련하여 자신이 기억하는(책 속에 등장하는) 가장 선명한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세요.

“몇 개의 에피소드를 말해볼게요. ‘한 번만 더 학교에서 자해를 하면 넌 학교 이제 못 다닐 줄 알아라’, ‘우울증이 그리 심해가지고 어떻게 학급 회장을 한다는 거니?’, ‘너처럼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한 아이는 우리가 도저히 책임질 수가 없다.

우리 기관에서는 앞으로 널 도와줄 수가 없어’, ‘차라리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 내가 널 학교에서 매일 케어하느니, 정신병원 방문은 매일 가 줄 테니까’, ‘네 병은 네가 알아서 해야지. 약을 먹든지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든지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빨리 해결을 해’ 등이요.

학교에서 소위 ‘위험한 아이’로 낙인이 찍히면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 교사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정신건강 문제에 한해선 ‘아픈 아이’가 아니라 ‘위험한 아이’가 되어버리는 거죠. 정신건강 문제가 아닌 암과 같은 신체질환이었어도 이들이 이렇게 잔인한 말을 퍼부을 수 있었을까요.

‘넌 암이기 때문에 학교를 더이상 다닐 수가 없다. 그리고 상태가 더 악화된다면 넌 자퇴를 해야 해. 우리는 널 감당할 수가 없어’라고 쫓아내듯 과연 말할 수 있겠느냔 말입니다. 이렇듯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공감과 이해가 결여된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끊임없이 폭력적 시선과 말들을 듣고, 견뎌내고 있습니다.

이 책에도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너무 황당해서 웃기기까지 한 에피소드들이 상당수 등장합니다.

정신건강의 문제는 부끄럽거나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느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정신건강은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감정과 이슈들과 함께 잘 지내고자 하는 것이며 정신건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을 줄이는 것(destigmatizing)입니다.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의 경험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각기 다른 아픔의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출간하며 세상에 널리 알리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혹시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나 수록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면 조금 더 들려줄 수 있을까요?

“지난해 봄, 이런 책을 내자고 했을 때 스무 명이 넘는 피어 스페셜리스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혀주었습니다. 우리는 모여 매일 한 시간씩 글을 쓰고, 공유하고, 서로가 피드백을 주고받았습니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를 받기도 했으며, 다 낫지 않은 상처가 쓰라리기도, 또 내 글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진 않을지 두려움이 순간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 차마 다 못 담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신변 보호를 위해, 글로 다시 적기엔 너무 아플 것 같아서 등 다양한 이유로 다 꺼내지 못한 저자들의 아직 진행 중인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괴테는 용기내는 것에 대해 ‘그것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상태’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들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두려워하면서도 이들은 올바른 길을 향해 용기를 냈고, 지금도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들이 지금 맞서 싸우고 있는 것들에 결론이 나오게 됐을 때, 여러분들과 다시 한 번 그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 믿습니다.”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수없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픔의 경험 전문가’로서 힘들 때 가장 듣기 싫은 말, 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활동을 하면서 물론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들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힘들면 그만둬, 포기해’라고 본인 입장에서 쉽게 말하기보다는 ‘함께 가보자, 조금만 더 힘내보자’라는 지지와 격려의 말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이후 정신과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들었는데요. 책 곳곳에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들이 등장합니다. 정신과 진료 혹은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꼽아주신다면요?

“이 책 곳곳에 나한테 맞는 정신과 의사, 상담사 찾는 법 등은 자세히 정리가 돼 있으니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실 계획이 있시거나, 현재 이용 중인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당당히 서비스를 구매하고 이용하는 ‘소비자’라는 사실을요. 그러기에 소비자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충분히 누리시고 요구하시길 바랍니다.”

-독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요.

“멘탈헬스코리아의 한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가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앞으로 너의 미래는 어떨 것 같니’라는 질문에 그녀는 대답했어요. ‘지금까지 겪은 일보다 더한 일은 없을 거기 때문에 앞으로의 제 미래는 무조건 밝을 거에요’라고 답했어요.

아픔 속에서도 절망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에게 참 고마웠습니다. 이 책을 읽는 청소년 독자들도 그럴 거라 생각해요. 아픔을 겪었지만 희망을 찾고, 꿈꾸고 싶은 분들이라고. 함께 가요. 함께 하루 하루 우리 더 살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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