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성 “신발 한 짝도 가져갈 수 없는 게 죽음…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신창성 “신발 한 짝도 가져갈 수 없는 게 죽음…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7.27 19: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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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성 마인드포스트·웃음플러스 대표 인터뷰
생사(生死) 오가는 수술 거치면서 ‘죽음’ 깊이 성찰
죽음 두렵지 않아...삶과 죽음 고민 긍정적으로 승화시켜
선한 마음 가진 이들 많기에 세상이 긍정적으로 흘러가
큰 부자 되기 보다 나의 인연(因緣)들과 재밌게 살고 싶어
마인드포스트에 6천만 원 기부…더 발전된 신문 됐으면
나이 들어도 꿈꾸는 삶 살아야…그때 삶의 희열 느껴
어떤 사람도 쓸모가 있기에 태어나…세계를 변화시켜야
정신장애에 편견 가졌지만 막상 만나보면서 이해 깊어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 엑스트라 인력을 공급하는 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매출이 100억 원이 넘는 기업이었다. 그곳에서 경리부장을 하던 중 우연한 계기로 세무법인에 취직해 당시 아내와 결혼했다.

이후 아내가 세무사 자격증을 따고 인천에서 개업한 이후 그는 사무장 겸 영업부장으로 일했다. 그가 끌어온 업체는 300곳이 넘었다. 그 업체 중에는 산재장애인 단체도 있었다. 기부금이 공제되는 회사였다. 그는 거래업체들에 후원을 요청했다. 한 시간 안에 열 군데 업체에서 월 5만 원의 자동이체를 했다. 고마웠다.

그렇다면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는 세무서에 가서 ‘행복나눔’이라는 사업자 등록을 했다. 거래 업체 300곳에서 월 1만 원씩만 기부받아도 사람들에게 실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규모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허전했다. 복지와 기부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그때 뜻밖의 일을 겪는다. 뇌에 지름 10㎝의 혹이 생긴 것이다. 혹 제거 수술을 했지만 너무 커서 절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행히 악성이 아니라 양성이어서 관리만 잘 하면 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물었다. 왜 이런 극한의 질병이 찾아오는지를. 그리고 무엇인가를 세상과 나누며 살고 싶었다.

당시 정신장애인 당사자 언론인 <마인드포스트>가 출범을 앞두고 예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는 정신장애가 뭔지도 모른 채 자신의 대학원 은사였던 이용표 교수와 지인인 한울정신건강복지센터 최정근 사무국장이 신문 창간을 위해 뛰어다니는 걸 보고 거기에 참여했다. 직원 월급과 사무실 월세, 운영비 등을 모두 자신의 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마인드포스트> 대표이사 직함으로 딱 1년만 하기로 했다. 모자라는 돈은 아내 몰래 퇴직금 신청을 해 3000만 원을 다시 신문 운영비에 투입했다. 그러는 동안 1년만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은 2년까지 이어졌다.

혹자는 의혹의 시선으로 봤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 언론에 아무런 대가 없이 투자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시선들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기부도 있다. 그는 그간 6000만 원의 돈을 <마인드포스트>에 기부했다. 또 매월 거래업체들이 좋은 일에 쓴다며 자동이체하는 돈들을 모아 사단법인 행복플러스를 통해 독거노인과 빈곤한 청소년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행복플러스는 ‘행복나눔’이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만들어진 단체다.

그는 20대에 가슴에 난 혹을 제거 받고 중환자실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40대 후반에 또 한 차례의 뇌의 혹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는 죽음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왜일까.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삶 이후의 삶으로 갈 경우 인간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깊은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다. 따라서 현재에 충실하고 부(富)의 재원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것.

그는 삶을 그렇게 살고자 했고 지금 역시 그런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신창성(53) 사단법인 웃음플러스 대표를 만난 건 비가 내리던 지난 23일 인천 계양구의 그의 사무실에서다. 현재 <마인드포스트>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이행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창성 '웃음플러스' 대표 (c)마인드포스트.
신창성 '웃음플러스' 대표 (c)마인드포스트

-수술을 할 정도의 사고를 경험하면서 삶을 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죽음이 두렵지 않더라고요. 그건 진심이에요. 죽음이 내 앞에 와서 당장 오늘 죽더라도 내가 최선을 다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 외에는 (없어요). 누구나 다 죽잖아요. 단지 선후(先後) 차이만 있죠. 신발 한 짝도 가져갈 수 없는 게 죽음이잖아요. 남아 있는 식구들은 슬퍼하겠지만. 그렇게 마음의 상태가 바뀌는 거 같아요. 현재,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는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크게 아파보면 다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요. 나는 가는 게 별로 두렵지 않더라고요. 내가 20대 때 가슴에 혹이 주먹만하게 나서 수술하고 중환자실에 사흘을 있었어요. 그때는 회사 다니고 건강했으니까 몰랐죠. 그런데 머리 수술을 또 받은 거야. 그러고 나서 죽음이 두렵지 않아졌어요.”

-큰 질병에 걸리면서 ‘왜 내가’라는 질문이나 노여움은 없었나요.

“(웃음) 처음에는 당연히 원망 같은 건 있었죠. 인간이니까 없을 수 없잖아요. 그런데 제가 술을 좋아하고 스트레스를 술로만 풀었으니 (병이 생긴 건) 당연한 거다라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그럼 (술을) 줄여야죠. 운동을 해야 되고. 그런 과정을 밟아가면서 긍정적으로 변하더라고요. 큰 병에 걸리면 사람에 따라서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요. 나는 스스로 그걸 긍정적으로 승화시켰다고 봐요. 그러니까 지금 살아 있지.”

-그렇게 살아오면서 깨달은 삶의 비밀 같은 게 있었을까요.

“비밀이랄 것도 있나요, 다 똑같죠(웃음). 생각의 차이에요. 받아들이는 생각의 차이. 어떤 환경이든 간에 생각의 차이가 많은 걸 변하게 해요.”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죠.”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거 같습니다.

“수술실에 누워 있을 때, 그리고 깨어났을 때 죽음에 대해 생각하죠. 그리고 깨어나서 고통의 기간이 약간 있어요. 그럴 때 덤덤히 받아들였어요. 내가 인간적으로 뭘 어떻게 하겠어요. 단지 아프면 병원에 가야 되고 머리에 어떤 혹이 있으면 떼내야 하는 것밖에는.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 되고. 처음에는 원망을 많이 했죠. 인간이 원망을 안 할 수 없잖아요.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니까 마음이 편해져요.”

신창성 '웃음플러스' 대표 (c)마인드포스트.
신창성 '웃음플러스' 대표 (c)마인드포스트

-사단법인 웃음플러스도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겁니까.

“그렇죠. 그전에는 행복나눔이라는 개인사업자를 등록했어요. 그걸 이어서 3년 전에 웃음플러스를 만든 거죠.”

-하나의 이익도 안 나오는 마인드포스트 경영에 왜 돈을 기부했습니까.

“얼떨결에 했죠(웃음). 처음에는 일 년까지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일 년이 지나니 마인드포스트 경영진들이 그때부터 바빠진 거야. 월세도 내야 하고 급여도 줘야 하니까. 그러니 내가 나 몰라라 할 수 없고 해서 조금 더 관여를 했죠. 사단법인 웃음플러스 모토가 저소득층 청소년하고 독거어르신 도와주는 거예요. 저는 그 중의 한 분야가 정신장애인 쪽이라고 생각했죠.”

-퇴직금까지 몰래 빼돌려서 마인드포스트에 기부했다가 아내에게 혼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웃음). 처음에는 내 돈으로 했는데 돈이 좀 부족해서 고민을 했죠. 마침 내 퇴직금이 3000만 원 정도 되더라고. 도장 찍고 퇴직금을 깼죠. 아내한테 들켰는데 뭐라고 그래요. 이미 저질러버린 일인데. 이혼을 할 거야 뭘 할 거야.”

-받아주신 거네요.

“그럼요. 받아줬으니까 지금 살죠. 제일 큰 후원자가 아내죠.”

-지난 2년간 6000만 원 정도를 마인드포스트 운영에 기부했습니다. 큰 돈입니다.

“큰 돈이라 해도 그게 밑거름이 돼서 마인드포스트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잘 나가면 더 바랄 게 없죠. 앞으로도 같이 갈 거니까.”

-마인드포스트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조합을 만들면 어떤 이익을 낼 수 있을까요.

“사회적협동조합은 이익이 절대로 없어요. 이익을 추구하고자 했다면 협동조합으로 갈 필요가 없어요. 이 협동조합은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골고루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 만든 거지 이익을 분배할 수 있는 부분은 없죠.”

-종교가 있습니까.

“종교는 가톨릭. 견진(堅振)까지 받았습니다. 4년 전에요.”

-종교를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일단 이미지가 좋잖아요(웃음). 제가 불교도 가보고 기독교도 가 봤는데 그래도 같이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끼리 종교도 같으면 더 좋겠다 싶었죠.” (이용표 가톨릭대 교수와 최정근 한울 국장은 가톨릭 신자다-편집주)

-언젠가 제게 지나가듯이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지목해서 ‘그 죄를 어떻게 갚으려고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믿습니까.

“아니요. 믿지는 않아요(웃음). 왜냐면 세상에 나쁜 짓을 하고도 잘 사는 사람들 많잖아요. 꼭 선한 마음을 갖는다고 해서 잘 사는 건 아니더라고요. 물론 이 사회가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가겠죠. 그런데 그 선한 마음이 꼭 긍정적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거든요.

모든 게 경쟁이잖아요. 사업을 한다는 자체는 다른 사람하고 인연을 맺는다는 거거든요. 맨날 좀 더 주십시오, 하면서 모든 사회단체들이 (정부에) 빌붙어서 구걸을 하는 형태로 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물론 정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받아야죠. 그런데 협동조합 출범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스스로 설 수 있는지 부분들을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신창성 '웃음플러스' 대표 (c)마인드포스트.
신창성 '웃음플러스' 대표 (c)마인드포스트

-석사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것은 세상 이치를 더 알고 싶어서였습니까.

“내가 정말 큰 부자는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한테 돈이 어마어마하게 따를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그러면 내가 만나는 사람과 어떻게 재미있게 살아볼까 하는 고민에서 사회복지 대학원을 선택한 거죠.”

-저는 가난합니다. 따라서 삶이란 일정 정도의 굴욕을 감수하면서 가야 되는 길 아닐까요. 못 사는데 자존심 내밀어봐야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국가의 존재 이유가 개인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는 거잖아요. 그 최소한의 삶이 보장됐을 때 다양한 삶들이 새롭게 나타나거든요. 국가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한 달에 50만 원씩 주면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한 달에 몇 억이 있어도 불행한 삶이 있잖아요.

내가 한 달에 50만 원씩 꼬박꼬박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다면 생활을 즐기고 여가를 즐길 수 있거든요. 그 정도의 돈이 확보되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잖아요. 다 자기 갈 길을 찾아갈 수 있고. 그럼 굴욕감을 가질 필요가 없잖아요. 사회복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예요. 그 복지를 쟁취하기 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사회가 그렇게 간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마치 불멸(不滅)할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건 그들만의 리그일 수 있죠. 그런데 그들만의 리그를 결코 우리가 부러워한다든가 저주를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자기들이 열심히 해서 번 돈이라면 말이죠. 돈을 쓰는 방법이 사람들마다 다 다르더라고요. 돈이 많아서 그걸 꼭 움켜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걸 베푸는 사람이 있어요. 다 다르기 때문에 그걸 하나로 뭐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거 같아요.”

-선생님은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몇 번의 대수술도 겪고 나서 지금 부족함 없이 살잖아요. 골프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고. 부족함 없이 살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

-인간이 이타적(利他的)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죠. 이타적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양한 과정에서 일부는 이타적이고 일부는 이기적이기도 해요. 이타적인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이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굴러간다고 생각하죠.”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내가 이룰 수 없는 꿈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이 아닐까요.

“맞습니다. 내려놓는다. 그런데 내려놓으면 재미없잖아요. 엊그저께 내가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한 사람이 70대에 창업을 했어요. 그 사람이 창업을 할 때 골프공 회사를 인수했거든요. 인수할 때 자기가 성공을 못 하면 전 재산을 내놓겠다라고 했어요. 거기에 나이는 고려 사항이 아니죠.

인간은 살면서 뭔가를 계속 긍정적으로 추구를 해야 살아있는 느낌이 나는데 나이 들고 병들었다고 꿈을 접으면 그런 삶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활동적으로 살아가야 자기만의 삶의 희열을 느끼죠. 그걸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못 느끼고 살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밥만 먹고 하면 동물하고 뭐가 다르겠습니까. 내가 누워 있지 않으면 모든 생각을 긍정적으로 해 봐야죠.”

-정신장애를 모르고 있을 때와 정신장애를 알게 된 때,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180도로 바뀌었죠. 모를 때는 일단은 겁부터 났어요. 사회의 일반 시선들하고 같았죠. 겁도 나고 접근하려는 마음도 안 생겼고. 그러면서 상대편을 이해하게 되는 거죠. 우리가 결혼을 하려 해도 상대편을 이해하기 위해 굉장히 싸움을 많이 하잖아요. 일 년, 이 년 싸워서 한 사람이 포기를 하면서 가는 건데 하루아침에 다 이해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렇게 신문사를 같이 하고 대화하고 술도 먹어보고 하다 보니까 이해의 폭이 넓어졌죠. 그러면서 정신장애인들이 신문에 나오는 그런 악(惡)이 아니다,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결국 사회가 받아주는 환경이 돼 있지 않아 그걸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창성 '웃음플러스' 대표 (c)마인드포스트.
신창성 '웃음플러스' 대표 (c)마인드포스트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은 불필요한 존재로 정의됩니다.

“절대 아니죠. 어떤 사람이건 태어나면 그에 대한 쓸모는 있다고 봐요. 단지 그 사람이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고 사느냐, 혹은 조금씩 변화를 위해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봐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넓고 깊어진 것은 아닐까요.

“맞죠. 굉장히 삶이 달라진 거죠. 제가 처음에는 복지 하면 복지관, 노인복지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신장애인 쪽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하고 소외된 분야의 하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긍정적인 방향을 이룰 때까지 같이 한 번 가기 위해서 노력할 겁니다.”

-이 세계를 넘어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할까요.

“당연히 있다고 봐요(웃음).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불교에서는 ‘극락’이라는 곳이 있고 ‘도솔천’이라는 곳이 있대요. 극락이라는 세계에 가보면 맨날 공부하는 사람밖에 없대요. 그런데 이승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극락을 가면 거기는 지옥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도솔천에 가서 세상의 풍류를 즐기라고 그래요.

공부를 즐기는 사람이 극락 가면 즐거울 건데 막상 죽어서 공부를 하라고 그러면 그런 사람들에겐 지옥이 되는 거죠. 저는 신의 존재를 믿고 다음 세계가 있다고 믿고 있어요.”

-그러니까 죄짓지 말고 살자?

“천주교에서 연옥이라는 곳이 있어요. 중간에 거쳐 가는 곳인데 그 개념하고 극락, 도솔천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들이라고 했습니다. 대표님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죠.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새로운 세계로 한 번 가보는 거죠. 새로운 세계지만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이 세상 사람들도 궁금해하죠. 엄마한테 태어나서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듯이 똑같이 새로운 세상이 있을 거라 나는 믿어요.”

-만약 또 다른 단체가 만들어져서 선생님한테 거액의 기부를 요청하면 다시 또 기부할 겁니까.

“일단 내가 허락하는 한은 기부를 해줄 용의는 있어요.”

-사랑은 뭘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정말 사랑한다면 서로 보듬어야죠. 상대편의 상황을 지적질하거나 꼭 집어서 아프게 하거나 그러지 않고 안아주는 게 사랑이 아닐까요. 그걸 위해서는 굉장히 힘들어요. 왜냐하면 나 자신도 어떨 때는 힘들거든요. 화가 나기도 하고. 내가 부처님도 아니고 안 맞을 때는 그러잖아요. 그런데 가능하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하죠. 보듬어주는 거 안아주는 거.”

신창성 '웃음플러스' 대표 (c)마인드포스트.
신창성 '웃음플러스' 대표 (c)마인드포스트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일단은 새로 시작하는 사회적협동조합 마인드포스트가 권익 활동을 많이 하고 전국적인 활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는 제가 하고 있는 웃음플러스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단체로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어쩌면 삶이란 조금씩 양보하면서 가는 먼 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기자는 그가 내민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너른 창으로 햇살이 와와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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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20-07-28 09:14:15
너무나 감동적인 인터뷰네요. 마인드포스트 후원해주신 신창성 부부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