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옆에 침대’…정신병원 ‘보호실’서 변기와 침대 함께 설치한 것은 인권침해
‘변기 옆에 침대’…정신병원 ‘보호실’서 변기와 침대 함께 설치한 것은 인권침해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6.02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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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환기시설도 없는 보호실은 인간 존엄성 침해”
진정인, “용변 보거나 옷 갈아입을 때 노출, 굴욕감 느껴”
“보호실 구조·설비 기준 마련해 관련법에 포함시켜야”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격리 수용하기 위한 공간인 보호실에 환기 시설도 없이 침대와 변기가 같은 공간에 설치돼 있는 환경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 것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2일 인권위는 정신병원 보호실의 규모와 환기·통풍 시설, 화장실 등 보호실 구조와 설비에 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관련법 또는 훈령에 포함시킬 것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2018년 6월 한 정신병원에 입원한 진정인 A씨는 당시 폐결핵 치료를 받고 있었고 병원 내 전염 우려로 정신병원 안의 보호실에 5일간 격리됐다.

A씨가 격리된 보호실은 7.4㎡ 면적으로 환기시설이나 가림막 없이 침대와 변기가 같은 공간에 설치돼 있었다. 보호실은 외부에서만 잠금이 가능해 병원 관계자들이 아무 때나 출입이 가능했으며 출입문에는 내부가 보이도록 투명 창문이 설치돼 있었다.

보호실 천정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로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이 간호사실 모니터로 송출됐다. 다만 변기가 있는 곳은 화면에 보이지 않도록 CCTV 각도가 조정돼 있었다.

A씨는 보호실에서 용변을 보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 외부에 노출됐고 변기와 침대가 같은 공간에 있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비인격적 처우를 받았다고 인권위에 진정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A씨가 심한 조증, 욕설, 폭력, 수면감소, 과다행동과 환각 의심 행동을 보여 보호실에 입실해 24시간 관찰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또 “CCTV는 안전을 위해 환자와 보호자들의 동의를 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보호실의 경우 양변기 위쪽에 설치돼 대소변을 처리할 때는 관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일반적으로 화장실은 용변을 보는 소리나 역겨운 냄새 등으로 인해 환기 시설과 차폐시설을 갖춰야 위생적인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보호실에 차폐 시설 없이 변기와 침대를 함께 설치한 것은 사회통념상 인간의 기본적 품위를 훼손하는 처사”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또 “잠금 시설이 보호실 밖에만 설치돼 있어 관계자들이 아무 때나 출입할 수 있고 사각지대가 있어도 (진정인은) CCTV에 상시 노출돼 있다”며 “진정인이 용변 처리 등 일상생활에서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정신의료기관 폐쇄병동에서 보호실에 대한 공통 기준이 없는 상황”이라며 “보호실 구조와 설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이나 보건복지부 훈련에 포함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한편 인권위는 2015년 ‘정신병원 격리·강박 실태조사’를 실해해 2016년 10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호실의 구조와 설비, 강박 도구의 표준화를 위한 연구, 표준화된 보호실과 강박도구의 활용 및 정착을 위해 노력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2018년 8월 인권위의 권고를 일부 수용했지만 보호실에 침대와 변기가 함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아 이번에 추가 권고됐다.

인권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에 취약한 정신의료기관에 대해 방문 조사를 하고 정신장애인의 건강권 개선을 위한 조사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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