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일기장] 세 번째 페이지 : 꿈 속 용서의 기쁨
[옥탑방 일기장] 세 번째 페이지 : 꿈 속 용서의 기쁨
  • 이관형 기자
  • 승인 2018.09.27 2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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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일기장 세 번째 페이지. 꿈 속 용서의 기쁨

 

기록 시점 : 꿈에서 깨어나 맑은 새벽 공기를 마시며.

마음 날씨 : 분노의 불길이 생수의 비로 꺼짐.

나는 가끔 꿈을 꾼다. 주로 같은 내용의 꿈을 꿀 때가 많다. 아버지와의 불행했던 추억, 반 아이들의 괴롭힘이 반복된다. 그중 가장 피하고 싶은 꿈이 있다. 중 2 때 날 왕따로 만들었던 강희(가명)와의 재회다. 그는 늘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찾아온다.

그가 내게 다가오면 분노가 솟구치면서도 겁이 났다. 하지만 꿈속에서조차 복수는 할 수 없었다. 욕을 하거나 주먹을 날릴 용기가 없었다. 20년 전의 괴롭힘이 지금까지도 날 주눅들게 만들었다.

강희는 중 2때 짝궁이다. 키와 덩치가 제법 있었고, 하얗고 큰 얼굴에 눈이 부리부리 했다. 첫 인상부터 좋지 않았다. 매 수업시간마다 뒤에서 선생님들을 욕하고 험담을 늘어놨다. 강희에게 난 좋은 먹잇감이었다.

집에서 아버지에게 맞으며 기가 죽고 위축되던 모습이 학교에서도 나타났다. 강희가 가끔 장난으로 때리면 난 가만히 맞고만 있었다. 그러다 하나 둘,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당해도 어쩔 줄 모르던 내게 폭력과 욕설이 이어졌다. 그러다 결국 왕따가 된 것이다.

교실 안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 날 괴롭히면 그 모습을 보고 반 아이들은 환호했다. 날 괴롭히지 않으면 주류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인정받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괴롭혔다. 강희는 교실 안에서 슈퍼스타였다. 그리고 난 이름 없이 별명으로만 불리는 왕따였다. 재수가 없다는 이유로 주먹질을 하거나 정강이를 발로 찼다.

하지만 폭력보다도 말로 괴롭힘 당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창녀의 아들이라며, 여동생을 따먹겠다며 여러 모욕적인 말들을 내뱉었다. 강희는 폭력과 욕설의 차원을 넘어 섰다. 분필가루를 모아다 얼굴에 쏟기도 하고, 급식 국그릇에 쓰레기를 넣기도 했다.

반 아이들은 강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강희는 마치 사령관처럼 지능적이고 조직적으로 아이들을 움직였다. 폭행을 당하다 창문에 부딪혀 머리에서 피가 날 때도, 모두 내가 혼자 장난치다 다쳤다고 선생님께 거짓말을 했다. 내가 괴롭힘 당하는 걸 알면서도 선생님들은 그냥 웃어 넘겼다.

그 후로 20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망상이 하나 있다. 조폭 형들과 함께 강희를 시골의 빈 창고로 납치하는 것이다. 옷을 벗긴 채 무릎 꿇리고 머리 위에 오줌을 싼다. 땅에 흐른 오줌을 핥아 마시게 한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학교 안 여기저기에 뿌리는 것이다.

실제로 그럴 기회가 있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중 2 당시, 나의 상황을 안 어머니는 조폭들에게 돈을 쥐여 주고 강희를 혼내주자고 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지만 난 거절했다. 학교를 졸업하며 복수의 기회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잊혀 질 줄 알았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어서도 그 망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녀석을 무릎 꿇리고 오줌을 싸고 사진을 찍고..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은 괴로워만 갔다. 실행 할 수 없는 분노와 악한 생각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게다가 꿈속에서 강희는 계속 찾아왔다. 결국 약 없이는 잠들 수 없었다. 약에 취해 하루 12시간을 잤다. 깨어있는 동안에도 멍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20대를 보냈다. 다행히 하나님을 만나 마음이 회복되고 부작용이 적은 약을 먹으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20대의 10년 동안 하루 절반 이상을 침대에 누워 지냈다. 잘 때는 악몽에, 깨어 있을 때는 망상에 시달렸다. 한편, 악한 감정에 사로 잡혀 괴로워하는 나를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이후,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며 그런 나를 하나님께 고백했다.

성경 말씀대로 강희를 용서하기로 다짐했다. 과거 그의 행동들을 이해하려 했다. 강희도 중 1때 반에서 괴롭힘을 당한 왕따였다. 어쩌면 왕따를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 혹은 분풀이를 하기 위해 나를 선택했던 것이다. 물론 그의 행동을 정당화 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론 가엾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용서가 쉬운 건 아니다.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하고 싶은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용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관련된 책들도 읽어 보았다. 하지만 현재 나의 상황을 보면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가끔 페이스북으로 강희의 근황을 살핀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결혼하여 가정도 꾸렸다. 사진 속 웃는 얼굴엔 행복이 가득해 보인다. 얼굴엔 교활함이 느껴졌지만, 몸은 근육질로 단련돼 있었다. 반면 나는 대학시절 누워 지내느라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결혼은커녕 연애도 포기상태다. 몸은 약의 부작용으로 발병 전보다 20킬로 더 쪘다.

근데 내가 강희를 용서할 수 있을까? 차라리 강희가 잘못되어 모든 재산을 잃고 거지가 되거나 사고로 불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럼 용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페이스북으로 강희가 잘못되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진 속 강희는 여전히 웃고 있다. 도저히 강희를 용서 할 수 없었고 용서할 입장과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 내게도 기적이 찾아왔다. 어느날 꿈에 또 강희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난 두려운 마음을 안정시키고 천천히 말했다. “강희야, 나는 널 용서했어. 더 이상 너를 미워하지 않아. 그리고 너도 하나님을 믿었으면 좋겠어.”

그러자 강희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내 강희는 알 수 없는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잠에서 깼다. 꿈이 너무 생생했다. 다만 날 사로잡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되듯 마음이 상쾌하고 개운했다. 알 수 없는 기쁨과 감동으로 기분이 좋았다. 현실은 아니었지만 꿈에서나마 강희를 용서 할 수 있었다.

꿈처럼 내 잠재의식 속에서 이미 강희를 용서한 것이다. 이후 같은 내용의 꿈을 두 세달에 한 번씩 경험했다. 가끔 강희에 대한 기억으로 분노하거나 우울해 지다가도 꿈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꾼 꿈에서는 강희의 얼굴 자체가 바뀌어 있었다. 매우 선하고 순수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난 그가 강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강희에게 그동안 겪었던 힘든 시절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자 강희는 미안하다며 내게 용서를 구했다. 나도 진심으로 강희를 용서했다. 그렇게 나와 강희는 따뜻하고 진심어린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선한 얼굴로 나타난 강희가 하나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현실적으로 강희를 직접 만나거나 용서를 받아 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강희의 모습으로 대신 용서를 구한 것은 아닐까? 하나님도 내가 용서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길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노와 복수와 고통은 하나님의 은혜로 덮어졌다. 물론 분노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계속 용서하는 중이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내 아픈 마음을 만져주신다. 그렇게 오늘도 그 분의 사랑을 느끼며 조금씩 치유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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