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활동가로 산다는 의미
당사자활동가로 산다는 의미
  • 반희성
  • 승인 2024.02.03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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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누리집 갈무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누리집 갈무리

저는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한정자)의 활동가입니다. 지금은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현병 당사자입니다. 제가 처음 병을 얻게 된 것은 2011년 초입니다. 저는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소위 말하는 각종 망상과 환상 속에서 어려운 나날을 보내다 병원에 강제입원되었고, 그것이 제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제가 한정자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2021년 즈음입니다. 당시 저는 10년 정도 고립된 생활을 하다가 이제 겨우 사회에 나오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오랜 은둔생활로 인한 외로움에 지쳐있던 저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커뮤니티를 찾고 있었고 마침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한정자가 자택에서 가까워서 별생각 없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한정자가 당사자단체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한정자의 첫 인상은 참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자조모임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주중에는 알바를 하고 주말에는 자조모임을 하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활동했던 자조모임은 천둥과번개 문학모임, 당사자연구 모임, 단비운동모임 등이었습니다. 모든 모임이 다 좋았지만 저에게 가장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모임은 당사자연구 모임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정자에 나오기 시작할 때만 해도 저는 발병 당시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약을 먹어서 고생을 억누르고 있을 뿐, 근본적인 제 생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사자연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제 고생에 대해서 잘 이해하게 되었고, 일상생활로 점차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당사자연구를 진행하고 계셨던 선생님의 권유로 한정자 활동가가 되겠다는 꿈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40대에 접어든 나이에 한정자에 취업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저도 두 번이나 서류와 면접에서 떨어지고 세 번째만에 간신히 한정자 활동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꿈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업무에 어느 정도 적응이 끝나자 자아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비당사자 사회복지사의 업무보조를 잘하기 위해서 일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 당사자 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제 정체성을 찾게 해준 것은 이용자 분들과의 경험과 오픈다이얼로그에 참여한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당사자와 비당사자를 가르고 있구나, 그리고 난 전문가를 흉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비로소 다른 당사자 분들의 고생에 대해서 완전하게 마음을 열게 되었고 당사자 운동의 대의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연말 저는 제 개인적으로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한정자 6대 소장선거에 출마하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조금 더 큰 틀에서 당사자 운동에 헌신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회원 분들의 지지에 힘입어 소장선거에 당선되게 되었고 지금은 소장으로서 업무를 막 시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지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고립된 당사자 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30대에 발병해서 40대까지 잃어버린 10년을 보냈지만, 이제 제 꿈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꿈이 무엇이든 절대 불가능하지 않으니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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