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활지원주택은 거주 기간 제한 없는 신 주거 모델…재활 아닌 현재 생활에 초점 맞춰야”
[기고] “생활지원주택은 거주 기간 제한 없는 신 주거 모델…재활 아닌 현재 생활에 초점 맞춰야”
  • 유병연
  • 승인 2022.03.23 1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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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연 정신장애인 일자리 지원 사회적협동조합 뿌리샘 대표 기고
장애인 지역사회 정착 위해 주거와 생활 서비스 함께 제공돼야
서울시 ‘지원주택’ 제도는 좋은 사례…입원 당사자들에게는 ‘그림의 떡’
‘재활’ 용어는 비당사자의 시선…재활 이유로 사생활 보호받지 못하는 게 현실
정신장애인, 재활의 대상 아닌 지역사회 공존의 대상으로 생각해야
재활보다는 안정적이고 반영구적인 거주시설을 만들어 제공해야
탈시설 이후의 제도적 준비 부재, 제도 갖춰지면 시설은 줄어들 것
탈시설 용어는 ‘시설은 나쁜 것’ 내재돼…‘참살이’로 바꿔야
(c) 이동슈
마인드포스트 86호 만평 ‘정신병원보다 주택’ (c) 이동슈

‘정신병원보다 주택’이라는 마인드포스트 86호 만평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그거야!’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됐다.

지난 2017년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개정된 이후 정신장애인들의 인권과 재활 또는 자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더구나 지난해 말 그동안 정신장애인들이 차별대우를 받아온 장애인복지법 제15조의 폐지는 정신장애인들의 좀 더 나은 복지 지원이 가능해졌다는 의미에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치권에서도 장애인 탈시설지원법을 발의하는 등 장애인들의 인권과 사회 속에서의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에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도 시설이나 병원에서 나온 이후에 이들이 사회 속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대책은 매우 미흡하다.

그럼에도 일부 지자체에서 장애인들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주거지 지원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가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서울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원주택 제도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생활서비스가 제공되면서 20년이라는 반영구적인 주거지 제공이라는 의미에서 올바른 방향이라 여겨진다. 다만 현재 병원에 계시는 대다수의 당사자들과 같이 좀 더 밀접한 서비스가 필요한 대상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처럼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염려가 있다.

대상자 상태에 맞는 서비스가 즉시 제공될 수 있는 형태의 주거지가 필요하다. 어떠한 형태가 이러한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가를 당사자 입장에서 검토하고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재활’이 아니라 ‘지금 현재’

사회복지 현장에서 아무런 비판 없이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말 중의 하나가 ‘재활’이란 말이다. 이는 장애인의 사회복귀를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듣게 되는 단어다.

그러나 이 말이 가지는 의미가 오히려 장애인들의 인간적인 삶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품게 한다. 재활이라는 말 속에는 어떤 이유로든 부족한 것을 훈련을 통해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당연히 재활훈련을 거치면 정상적인 수준으로 돼 자활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문제들이 있다.

현재의 정신재활시설은 과연 당사자 중심인가? 현재의 재활훈련이나 재활시설을 통해 과연 몇 퍼센트의 대상자들이 소위 자활에 성공하고 있는가? 성공률이 그렇게 낮은 데도 재활이라는 이름으로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옳은가?

대다수 자활에 성공하지 못하는 당사자들은 재활 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활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온전히 당사자의 책임인가? 무엇보다 재활훈련이라는 것 때문에 당사자의 사생활이 보호받지 못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의 제한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는 현실은 그대로 좋은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인간은 언제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사생활이 보호되고 자율적으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정신장애인들은 재활이 아니라 현재 있는 상태에서 기간 제한 없이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창살이 아닌 자유로운 거주공간에서 살 권리. (c)istoe.com.br
창살이 아닌 자유로운 거주공간에서 살 권리. (c)istoe.com.br

정신질환으로 입원치료를 하고 약을 복용하면서 지내야 하는 정신장애인들은 재활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기능이 좀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말이나 행동이 다소 어눌할 수도 있지만 그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부족한 점은 사회가 채워줘야 하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더불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배려해야 하는 것이다.

‘탈시설(원)’에서 ‘참살이’로

탈시설화란 ‘수용 시설 또는 병원의 입원 중심의 치료를 이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및 사회 복귀 시설에서 제공하는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라고 정의된다. 이처럼 탈시설을 이야기할 때의 본래 취지는 수용 중심의 시설에서 사회로 나와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며 보다 인권이 보호되는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의 진행 상황을 보면 시설에서 나오게 하는 데 방점이 찍혀있고 나온 후의 대책에 대해서는 소홀한 느낌이다. 오히려 탈시설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고 이에 대한 제도가 지역사회에 잘 갖추어져 있다면 굳이 탈시설을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설은 줄어들 것이다.

어쩌면 탈시설이라는 용어가 갖는 의미가 사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탈시설이라는 말 속에는 ‘시설은 나쁜 것’이라는 의식이 내재돼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시설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각종 시설들은 법 기준에 따라 설치 운영함으로써 당사자의 안전과 생활, 보호자들의 부담으로부터의 해방과 같은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은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다만 기준에 맞춰 운영을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인권과 자유의 제한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며 이 때문에 탈원화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탈원화라 하면 시설은 나쁜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그곳에서 종사하는 많은 분들에게 그동안의 공은 물론 자존심 마저 상하게 할 수 있다.

차제에 용어 자체를 탈원화의 목적에 맞는 긍정적인 용어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나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이라는 뜻을 가진 ‘참살이’라는 용어를 제안하고 싶다.

참살이는 정신장애인들이 병원에서 단순히 나오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온전히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훨씬 긍정적인 용어로 생각된다.

또한 병원이나 시설에서 나와 사회 속에 살면서도 어렵게 생활하는 정신장애인들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모든 정신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할 수 있어 사각지대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탈시설 지원이 아니라 참살이 지원으로 바꾸어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생활지원주택’의 제안과 기대 효과

정신장애인들의 주거와 일자리 지원을 목표로 설립된 사회적협동조합 뿌리샘은 2020년 7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역사회 돌봄을 위한 공유 공간 지원 사업인 ‘정신장애인의 사회정착을 위한 주거지원 모델 개발 사업-지역 참여형 지원주택’이라는 연구사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신 주거 지원 모델로서의 ‘생활지원주택’을 보고한 바 있다.

생활지원주택은 기본적으로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기존의 ‘재활’에 초점을 둔 주거지 모델에서 ‘지금 현재’에 중심적 가치를 두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반한 주거모델을 추구한다.

또한 생활지원주택은 대상자들의 사생활이 보호되고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며 언제나 전문가로부터 필요한 생활 서비스를 받으면서 기간 제한 없이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개발된 주거모형이다.

다음은 생활지원주택의 개념과 운영방안 등이다.

생활지원주택은 4~5인이 한 주택에서 주방, 화장실, 세탁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최소한의 사생활이 보호되는 1인 1침실과 전문가의 다양한 생활 지원 서비스가 제공되며 공유 공간을 운영하게 된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의 장이 마련되고 주민의 일원으로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진다. 삶의 터전으로써 기간 제한 역시 없다. 이는 최소한의 조건이며 여건이 허락되면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딸린 1침실 또는 주방 시설까지 갖춘 원룸형도 가능하다.

생활지원주택은 일인 일실을 통한 사생활 보호를 원칙으로 한다. (c)veromobili.com.br
생활지원주택은 1인 1실을 통한 사생활 보호를 원칙으로 한다. (c)veromobili.com.br

기존 주거서비스와의 차이점은 재활시설로서의 주거지가 아니라 생활시설로서의 주거지라는 점이다.

사생활이 보장되는 1인 1침실의 제공, 입주자의 자유가 보장되는 선에서 각자에 맞는 전문가 상담 및 생활서비스의 제공, 입주 기간의 제한 없음, 주민과 소통하는 공유공간의 운영, 지역 내 봉사자원 연계로 지역 돌봄 체계의 구축 등을 들 수 있다.

운영 방안과 관련해 정부(지자체)가 생활지원주택 운영에 필요한 조건에 충족한 법인을 운영주체로 선정해 위탁하도록 한다.

생활지원주택 모델과 같은 형태의 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신축하거나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해 정부가 선정한 법인에게 임대한다. 임대 기간은 2~3년 단위로, 제한없이 연장이 가능하다.

정부로부터 운영자로 선정된 법인은 운영과 관련한 세부계획을 세우고 입주 대상자를 선정하며 1주택당 책임자(원장)로 전문가 1인을 채용한다. 입주자 부담은 공동생활가정 입주비 수준으로 보험환자의 병원 입원비보다는 저렴하게 책정한다.

또 원장은 입주 회원들에 대한 개별상담 등 회원들 각자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전반적인 주택운영을 담당하고 정부(지자체)는 원장의 인건비와 약간의 운영비를 지원해 운영상태를 관리한다.

생활지원주택은 사회통합 모델

이어 운영자(법인)는 지역 내 자원들(종교계 봉사단체, 동복지협의체, 주민자치위원회 등)을 활용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협조를 받아 거주자들이 안정적으로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운영한다.

기대효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회의 도움을 받으며 지낼 수밖에 없는 정신장애인들이 안정적으로 사회에 정착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또 퇴원하고자 하는 정신장애인들의 주거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참살이를 촉진할 수 있다.

이 모델은 사회통합 돌봄의 모델이 될 수 있어 정신장애인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 노숙인은 물론 노인 주거 문제 해결에도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주민들의 인식개선과 참여를 높임으로써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인권과 자유를 누리면서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안정된 주거지와 각자에 맞는 적절한 서비스 지원이 필수라는 것은 명확하다.

대상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주거지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시행할 때가 됐다. 안정적인 주거가 복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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