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장창현의 포착] '영혼수선공' 제작진에게 띄우는 편지
[정신과 의사 장창현의 포착] '영혼수선공' 제작진에게 띄우는 편지
  • 장창현
  • 승인 2020.06.07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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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드라마 '영혼수선공'
KBS2 드라마 '영혼수선공'

'영혼수선공' 제작진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장창현입니다.

마음에 대한 그리고 사랑에 대한 쉽지 않은 소재로 드라마를 만드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정신의료를 소재로 한 드리마가 시작되는데 대해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매일 뵙는 환자분들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어떻게 드라마로 잘 표현하실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일단 드는 생각은 마음을 소재 정도로만 사용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는 점입니다.

정신치료의 과정은 정말 섬세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는 것이 기본이지요. 그리고 정신치료의 기본은 안전한 진료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환자들에게 안전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치료자가 감정적으로 동요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지요.

하지만 드라마를 살펴보았을 때에 환자 캐릭터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사 캐릭터들도 감정이 과잉되어 있음이 눈에 띄었습니다. 섣부른 치료자의 추측과 직면, 해석도 너무나도 빈번하게 보여지더군요.

KBS2 드라마 '영혼수선공'

환자들이 가능한 한 최대한의 회복과 치유의 과정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데는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치료 현장과 일상의 삶의 구분이 없이 넘나들고, 섣부르게 환자에게 선물을 하고, 자신의 구원환상(rescue fantasy)을 있는 그대로 자신의 지도감독자(supervisor)가 아닌 환자에게 드러내는 건 염려가 됩니다. 치료가 치료적으로 제공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그럴 경우에 치료 부작용도 더 쉽게 나타날 수 있지요. 제작발표회 때 정신과 의사의 자문 하에 진행된다고 발표하셨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런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정신과 치료다운 정신과 치료가 대한민국 안에서 많이 경험되지 못하기에 제작진들께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치료자 모델, 환자의 삶을 전적으로 생각하고 마음 써주고 생활의 영역에까지 들어와서 치유를 베푸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그리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정신 증상의 회복뿐만 아니라 삶의 회복까지도 생각하고 치료를 행해야 합니다. 일의 회복, 관계의 회복까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무엇보다 기본적인 정신과적 치료가 교과서적으로 먼저 제공이 될 때에 가능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중심의’ 정신치료와 ‘적절한’ 약물치료가 잘 사용되어야 하지요.

환자의 일상 공간에 느닷없이 등장하고, 환자에게 서슴없이 선물을 주고, 사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서 좋은 정신과 치료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점을 간과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정신과치료를 포함한 의료 영역의 모든 치료는 그 수행에 있어서 조심스러움이 요구됩니다. 또한 모든 치료는 효과와 부작용을 함께 갖습니다. 치료의 신중함은 환자분이 효과는 최대로, 부작용은 최소로 경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간과하시는 부분이 ‘영혼수선공’ 드라마를 통해 느끼는 가장 큰 답답함입니다.

하지만 이미 드라마가 상당 부분 안타까운 방향으로 들어가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이라도 좋은 마음의 치유, 올바른 정신건강의학과적 혹은 심리적 치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고찰과 반성 하에 앞으로 드라마를 만들어가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좋은 정신과 진료가 대한민국에 잘 자리잡기를 바라는 작은 한 정신과 의사의 진심어린 조언으로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느티나무의료사협의원, 살림의료사협의원, 원진녹색병원을 주 1,2일 순회하며 문턱낮은 진료를 하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장창현입니다. 비평 정신의학, 함께하는의사결정모델,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 성소수자 정신건강에 관심이 있습니다.
느티나무의료사협의원, 살림의료사협의원, 원진녹색병원을 주 1,2일 순회하며 문턱낮은 진료를 하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장창현입니다. 비평 정신의학, 함께하는의사결정모델,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 성소수자 정신건강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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