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산불 주민 트라우마…국가트라우마센터가 나선다
강원 산불 주민 트라우마…국가트라우마센터가 나선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4.11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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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산불 피해주민들 ‘트라우마’ 증상 남겨
대형사건 대응하며 재난 컨트롤타워 필요성 대두
2018년 4월 국립정신건강센터 내에 신설
국일고시원 화재 등에 심리안정 지원 중요 역할

지난 4일 강원도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속초시 등 강원 일부 지역에 축구장 면적 735배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주민 한 명이 숨지고 집이 전소된 것을 비롯해 축사 가축들도 잇따라 화마에 변를 당했다.

순식간에 번진 산불에 집을 남긴 채 황급하게 떠나야 했던 주민들은 불이 꺼지고 다시 돌아온 뒤 전소된 집 앞에서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의 심리는 물리적 위협 앞에서 몸을 피하게 되지만 이후 그 억압과 상처의 기억이 계속 떠오르면서 깊은 트라우마를 입게 된다.

강원도 고성 산불을 겪었던 피해 주민들은 사고 충격으로 화재 현장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거나 꿈에 나타나는 ‘플래시백’ 증상을 비롯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다. 이는 인간의 내면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한 피해 주민은 “눈만 감으면 그때 그 시뻘건 불꽃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심장이 쿵쾅거리죠”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심리상담 등 적절한 개입이 초기에 진행되면 그 트라우마가 점점 더 내면에서 강화되는 걸 약화시킬 수 있다. 트라우마 치료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번 화재에는 소방관만 개입한 것이 아니다. 정신적 후유증을 입은 피해주민들을 상대해 심리를 안정시키는 정신건강 관련 기관들의 참여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기관이 국가트라우마센터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지난해 4월 개소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소속된 직제를 갖고 있다.

앞서 정부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포항 지진 등 대형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심리 지원에 대한 국가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국가트라우마센터가 건립되기 전까지는 2013년 5월 국립정신건강센터 내에 발족된 심리위기지원단이 담당해왔다. 그러나 심리위기지원단은 비상설 조직으로 중앙 차원의 체계적 대응이 어려워 정신건강 고위험군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대형 재난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에 대한 체계적인 심리지원을 위해서는 컨트롤타워로서 피해자에 대한 심리지원을 총괄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왔다.

이후 복지부는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설치, 운영할 수 있는 법안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했다.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은 복지부장관이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 환자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 적응을 위해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센터는 이 경우 심리지원을 위한 지침의 개발과 보급, 트라우마 환자에 대한 심리상담과 치료, 트라우마 조사·연구, 심리지원 관련 기관 간 협력체계 구축 등을 수행하도록 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지난해 11월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7명이 사망하는 사건 이후 생존한 고시원에서도 긴급 심리상담에 들어가는 등 힘을 발휘했다.

이번 화재에서도 이 기관은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국립춘천병원, 강원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속초시정신건강복지센터, 속초시보건소가 연계해 ‘강원산불 통합심리지원단’을 가동했고 정신과 전문의 및 정신건강전문요원 등이 파견돼 긴급 심리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9일까지 방문을 통한 재난심리상담은 111건이었고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다. 통합심리지원단은 개별 상담 후 추가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고위험군의 경우 속초시정신건강지원센터에 연계해 지속적으로 사례 관리 및 관찰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국가트라우마센터도 이동식진료소를 차리고 주민 심리 지원을 돕고 있다. 무엇보다 대형 재난 앞에서 우왕좌왕했던 과거의 대응체계를 벗어나 중앙과 지방이 연계된 심리지원이 제기능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센터의 설립 기반이 되는 법이 정신건강복지법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다. 국민의 정신건강에 봉사한다는 법적 가치를 구현하기 때문이다. 국가트라우마센터의 역할을 눈여겨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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