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봄은 결국엔 참 눈부시더라는 이야기- Part 2
그 해 봄은 결국엔 참 눈부시더라는 이야기- Part 2
  • 전민 기자
  • 승인 2019.01.04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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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이틀째가 되자 이곳 생활이 확실히 파악이 되었다. 너무 무료하다. 하루 세끼 밥먹고 담배피는 거, 잠자는 거, 용변보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아 할게 있긴 있다. 하루 한 번씩 원장-특전사 출신-이 회진을 돈다.

원장이 온다고 하면 남자, 여자 따로 한방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서 상석에 방석을 놔둔다. 원장 자리다. 환자마다 자기 자리가 다 있다. 원장이 와서 앉으면 한 명씩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다 얘기한다. 점호하는 기분이다. 다 똑같은 얘기다. '잘 지내고 있다'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데서 솔직한 자기 얘기가 나올 리 만무하다. 원장은 늘 그렇듯 넘어간다.

회진 때마다 '거시기가 아프다'는 말을 하던 나이 많은 남자 환자가 기억난다. 그 사람은 우물거리는 소리로 만날 '거시기가 아파요'라고 호소했다. 이 얘길 할 때마다 몇몇 환자들이 웃는다. 환자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니까 병원에 방치되어 있는 거구나 생각이 든다. 나중에 이 환자를 외래에서 다시 만났다. 나를 발견하고 경계한다.

정신병원에 있게 되면서 정말 문제는 바깥사회와 격리된다는 것이었다. 그 안에서는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물건들이 자해도구라며 압수당하고 반입금지당한다.

아니 연필이 자해도구가 된다고 자해할 생각이 없는 사람까지 연필을 못 쓰게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관리의 편의를 위해 획일적으로 환자의 개인생활을 규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

병원에 온지 일주일이 지나자 생각에 일대 전환이 왔다. 지금 내 상황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보호사나 간호사의 눈에 띄어 상태가 호전됐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그래야 퇴원을 할 수 있다.

병원생활이 갑갑하고 힘들다는 건 보호사들이나 간호사들도 안다. 그렇다고 갑자기 좋아진 척하면 그건 또 가려낸다.  그러니 진짜 병이 나아야 한다. 정신병원이 오래 있고 싶은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유때문에라도 빨리 병이 회복되서 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병원이 머물기 싫은 곳이므로 일단 입원은 했어도 빨리 나갈 생각을 해야한다 그거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사실 그렇다. 병원이 머물기 괜찮은 곳이라면 굳이 나가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환자를 위해서라도 병원에서는 환자의 자유를 억압하고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논리가 된다. 이상한 얘기지만 말이 된다.

보호사가 샤워를 좀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곧 샤워를 했다. 생각해보니 입원하고 나서 처음으로 샤워를 한 것이었다. 보호사 말 듣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젊은 남자는 남자숙소 하나를 자기 방처럼 쓰면서 문 입구에서 푸시업을 하고 웃통을 벗고 자기 몸을 과시한다. 보호사가 칭찬해주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내가 있는 동안에 보호사가 환자를 폭행하는 걸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나말고도 몇명이 봤는데 다른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환자를 그렇게 팰 수 있다는 거, 그리고 그 사실이 외부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당시의 정신병원의 한 단면을 드러내 준다고 생각한다.

면회온 아버지에게 병동생활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더니 그걸 당직의가 옆에서 듣고서 대화중에 끼어들어 그런 사실 없다고 강변한 적이 있다. 의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지 모르지만 직접 병실 생활을 하는 환자입장에서는 생활이 얼마나 불편한지 모른다.

정신병원에 감금되었구나 느끼기 시작한게 들어온 지 이주가 지났을 무렵이다. 퇴원의 최종 결정권자는 의사에게 있다. 강제입원이라는 건 '네가 들어올 때 강제입원이라는 것에 네 부모가 동의를 했기 때문에 네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네 인신을 우리가 구속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내가 아무리 건강해지고 자기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의사가 허가하지 않으면 나는 병원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내 신체의 구속권한을 제3자인 의사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이 과거의 법체계였다. 정신병환자는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하고 사회에 그냥 풀어둘 경우 그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사실 정신병환자를 그렇게 병에 걸린 환자로 만든 것은 사회 그 자신이고 정신분열증, 조울증, 이런 것은 이름붙이기에 지나지 않는다.

사월이 지나기 전에 입원을 했는데 나는 오월 오일 어린이날에는 퇴원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어린이날이니까요... 그러나 퇴원을 간절히 고대하는 내 바램과는 다르게 어린이날은 아무 일 없이 야속하게 흘러가 버렸다. 그 다음으로 스승의 날을 선택했다. 그러나 스승의 날에도 아무 일이 없었다. 나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입원을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다. 받아들인 게 아니라 그냥 체념이다.

정신병원에서 살다보니 나한테 말을 거는 아저씨가 생겼다. 이 사람은 알콜중독으로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는 사십대 남자다. 결혼을 해서 아이도 있다. 직장을 다녀도 술 문제때문에 오래 다니지 못한다. 이 병원은 알콜중독환자가 대부분이다.

거실 TV보는 곳에 작은 서가가 있다. 여기에 볼만한 책이라곤 하나도 없다. 표지가 찢어진 만화책 몇권, 나온 지 십년은 넘은 여성잡지들. 그래도 환자들은 심심하니까 거기서 책을 자주 꺼내본다. 나에게 말을 건 아저씨가 저녁 점호 전에 나한테 이런다.

자기가 여성지에서 '아나스타샤'라는 영화기사를 봤다고. 그 영화를 어렸을 때 본 기억이 있는 것이다. 러시아혁명 당시에 실종당한 러시아 공주이야기다. 나도 그 영화를 본 기억이 났다. 영화얘기를 좀 하자면, 자신이 왕족이면서 혁명당시에 실종됐던 아나스타샤 공주라고 주장하는 한 노숙자 여인(잉그리드 버그만)과 그녀를 이용해서 신분상승을 꾀하는 귀족(율 브린너)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유럽에 망명한 러시아왕족들에게 잉그리드 버그만이 진짜 아나스타샤라고 믿게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쓴다. 드디어 그녀가 다시 유럽사교계에 복귀하는 무도회가 열리는 날 밤, 잉그리드 버그만과 율 브린너는 사라진다. 그들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은 러시아 왕의 할머니는 예정대로 무도회를 진행하라고 말한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과연 아나스타샤였는지는 끝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알콜중독 아저씨는 이 아나스타샤가 지금도 어딘가에는 살아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말했다.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가짜 아나스타샤가 나타났었다는 잡지의 기사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당시 약 기운때문인지 아니면 너무나 오랫만에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되어서인지 말이 잘 나오질 않았고 속에서는 계속해서 말을 하라고 대화를 이어가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정작 겉으로 한 말은 몇마디 되지 않았다.

그때 그날 밤의 대화가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어떻게 해서든 대화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나오지 않는 말을 용기를 쥐어싸서 터트려 놓던 그날 밤이 생각난다. 남들이 볼 때는 어려울 일 없는 일들이 당시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입원 중에 내과방문을 단체로 했다. 병실환자들은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모양이다. 그때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뻤다. 내과에 머무는 시간은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만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다. 신선한 공기가 너무나 맛있었다.

정말 기가 막혔던 것은 위생시설이었다. 샤워실과 남녀 화장실이 하나로 붙어있었다. 샤워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샤워기 하나 달려있고 그 옆에 남녀화장실이 있는 것이다. 혹여나 환자들이 문을 걸어 잠글까 봐 화장실이나 샤워실은 잠금장치가 없었다. 여자들은 아예 씻는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남녀 떠나서 샤워하는 사람을 별로 못봤다.

이십년 전 이야기이니 지금은 개선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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