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경다양성이 새로운 연대가 될 수 있을까...신경다양성 포럼과 그 우여곡절에 대해서
[기고] 신경다양성이 새로운 연대가 될 수 있을까...신경다양성 포럼과 그 우여곡절에 대해서
  • 조미정
  • 승인 2023.02.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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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정 신경다양성 모임 '세바다' 대표

제1회 신경다양성 포럼’의 추억

‘한국신경다양성연대 보고서와 그 함의’ 발표 장면. [사진=세바다]
‘한국신경다양성연대 보고서와 그 함의’ 발표 장면. [사진=세바다]

2021년 12월, 내가 속한 단체 ‘세바다’는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와 함께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해 정신장애인 당사자단체에서 만난 인연이 프로젝트 착수로 이어졌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은 ‘신경다양성 포럼’이었다. 신경다양인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제1회 신경다양성 포럼’은 순탄하지 않았다. 해외 신경다양성 운동을 톺아보고, 세바다의 활동을 돌아보고, 미래 신경다양성 운동을 진단한다는 거창한 주제를 앞세웠지만, 계획은 흔들리라고 있는 것이었다. 거창했던 계획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가장 중요한 연사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난항을 겪으니, 모든 것이 흔들렸다. 연사 섭외 방법을 알지 못했던 우리는 결국 해외 신경다양성 활동가들을 한 명도 초대하지 못했다. 세바다의 신경다양성 활동가들을 연사로 세우고, 나도 발표 하나를 맡았지만 행사의 축소를 막지는 못했다. 다행히 당시 인하대 초빙교수였던 윤은호 박사님과 제철웅 교수님이 섭외해주신 교수님들이 자리를 지켜주셔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행사의 구성과 순서, 진행 방법을 몰랐던 우리는 다른 곳에서도 삐걱거렸다. 자료집은 출판의 ‘ㅊ’ 자도 모르던 내가 ‘쪽편집’을 했고, 장애인 보조 서비스는 숙련된 봉사자를 구할 수 없어서 제공하지 못했다.

당일은 어떤가. 일부 활동가들이 여러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대독으로 채워진 일에 더불어, 점심시간에 채식주의 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했다가 교통체증으로 단체 지각을 하질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했다.

당사자 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접수를 맡았고, 나와 사회자가 허둥지둥댔고, 학술대회의 긴장감과 비장함은 없었지만 행사 내내 우리는 웃을 수 있었다. 당사자가 기획하고, 당사자가 발표하고, 당사자가 봉사하는 과정 그 자체가 소중했다. ‘제1회 신경다양성 포럼’은 우리의 소중한 첫 시작이었다.

제2회 신경다양성 포럼’의 시작: 우리가 과연 연대할 수 있을까

‘제2회 신경다양성 포럼’을 준비하면서 나는 지난 1회 행사에서 못 이뤘던 꿈을 이루고 싶었다. 해외 신경다양성 활동가와 함께 보다 깊이 있는 신경다양성 컨퍼런스를 열고 싶었다. 지난 행사에서 발표를 맡아주셨던 성인자폐(성) 자조모임 estas의 윤은호 박사님을 파트너로 정했다. 마침 그분이 후견센터로 이직하면서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estas와의 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바다와 estas는 구성원부터 달랐다. 세바다는 다양한 젠더 정체성과 진단명을 가진 여러 계층의 소수자들이 많았고, estas는 중산층 자폐인 남성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오는 문화 차이로 인해 자주 싸웠다.

우리는 신경다양성에 대한 정의로 대판 싸우기도 했는데, estas는 자폐 중심의 신경다양성, 세바다는 정신장애까지 포괄하는 신경다양성을 지지했다. 결국 한 쪽이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업무 스타일도 달랐다. estas는 느긋했고 세바다는 효율을 중시했다. 이렇게나 너무 많이 다른 세바다와 estas가 과연 연대할 수 있을까? 세바다와 estas가 함께 주도하는 ‘제2회 신경다양성 포럼’은 큰 도전이 되었다.

예상대로 기획 회의는 소란스러웠다. 아주 시끄러운 식당에서 회의를 하기도 했고, 당사자 활동가들의 말소리가 서로 겹쳐서 양쪽 모두 흩어지는 것은 예사였다. 의도치 않게 언성이 높아져서 몇몇이 중재를 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소란스러운 회의에서 우리는 당사자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효율성과 구조화를 앞세운 신경전형적(neurotypical) 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때로는 시끄럽기도 하고, 조용하기도 하고, 말소리를 조절하지 못하기도 하고, 몸을 앞뒤로 흔들기도 하고, 졸기도 하고, 집중하지 못하기도 하고, 회의록을 빠르게 적지 못하기도 하는 우리의 본모습을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한 모습을 숨기고 한 명의 비장애인처럼 억지로 행동하지 않아도 됐다.

본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낸 결과적으로 우리는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학술회의의 기획단답지 않게 웃고 떠들고 시끄럽고 치열하게 회의하면서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 있었다. 공통점이라고는 신경다양성밖에 없었던 우리의 진전은 신경다양성이 연대의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었다.

세션 5 종합토론 장면. [사진=세바다]
세션 5 종합토론 장면. [사진=세바다]

‘제2회 신경다양성 포럼’의 메인 테마: 신경다양인의 차별과 연대

이번 행사의 메인 테마는 ‘신경다양인의 차별과 연대’이다. 신경다양인이 당사자의 자립을 방해하는 차별과 배제에서 벗어나 사회적 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교차성에 기반한 연대를 모색하는 자리이다. 쉽게 말하자면, 신경다양인에게 주어진 차별을 다른 집단과의 연대를 통해 해결한다는 것이다.

마침 세바다와 estas는 지난 2년간 신경다양인의 차별에 대해 주력하고 있었다. 세바다와 estas가 주축이 되어 5개 단체가 연명한 위치추적기 반대 성명과, 자폐 당사자 살해와 당사자단체 배제를 비판하는 estas와의 공동 논평, 생명권부터 사소한 자유 침해까지, 모든 층위의 자유 박탈에 집중한 ‘자폐인의 자유’ 백일장, ‘한국신경다양성연대’라는 이름으로 공동 집필한 장애인권리협약 보고서까지.

우리는 신경다양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 소외에 대해 계속해서 목소리 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신경다양인의 차별과 연대’라는 주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별에 대한 저항과 연대는 우리 당사자에게 너무나도 간절한 ‘타는 목마름’이었다.

우리는 여섯 개의 세션을 구상했는데, 모든 세션을 대표하는 기조 세션으로 ‘정신적 장애인과 CRPD(장애인권리협약)’를 골랐다. 자폐인과 정신장애인, 신경다양인은 생명권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신경다양성 관점을 반영한 대안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연대의 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아쉬움은 두고두고 한이 되었다. 정신적 장애인의 인권 상황에 대한 탄식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담아내기로 했다.

기조 세션에서 당사자 활동가는 나와 estas 이원무 회원님께서 각자 발표를 맡았다. 이원무 회원님은 정신적 장애인에 관한 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사항과 아쉬운 점을 명료하게 잘 정리해주었다. 나는 한국신경다양성연대 보고서의 내용을 소개하고 의의와 한계점을 설명했다.

많은 내용을 발표했지만, 특히 기초수급 장애인의 권리 침해, 발달장애인과 성격장애인의 심리상담 서비스 배제, 정신장애인을 이혼 사유 및 임신중절 예외 사유로 규정하는 판례와 모자보건법에 대한 비판을 힘주어 말했다. 이번 발표로 후련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아쉬움을 완전히 달랠 순 없었다.

신경다양인의 연대 관련해서는 다양한 나라의 당사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한 점이 눈에 띈다. 세션 2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케빈 스튜어트 장관이 스코틀랜드의 신경다양성 정책에 대해 소개해 주었고, 헤타 푸키 님께서 유럽 지역의 자폐인 연대체인 EUCAP과, 세계 자폐인의 공동 연대체인 GAFTAR의 경험을 나누어주었다. 자폐인 상담가 소니 할렛 님의 발표도 흥미로웠다.

세션 4에서는 일본 도쿄대 특임강사인 아야야 사츠키 님께서 일본의 자폐인 자조모임의 이념과 실천 경험을 나누어주셔서, 신경다양인 자조모임을 새롭게 기획 중인 나에게 참으로 유용했다. 1회 행사에서 못한 세계 당사자의 귀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어서 너무나도 소중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세션은 ‘세션 5: 신경다양성의 교차적 연대 구축’이다.

이 세션에서는 세바다의 이아나 님이 대한민국 거주 신경다양인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해 발표했고, 한국위키미디어협회 구은애 이사님께서 위키미디어 신경다양성 프로젝트 경험에 대해, 뉴로 프라이드 아일랜드(Neuro Pride Ireland)의 길리언 컨스 님께서 신경다양성 커뮤니티 구축에 대해 발표해주었다.

‘제2회 신경다양성 포럼’ 마무리 기념사진.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사진=세바다]
‘제2회 신경다양성 포럼’ 마무리 기념사진.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사진=세바다]

신경다양성이 새로운 연대가 될 수 있을까

훌륭한 발표 내용을 나의 부족한 언어로 다 설명하기에는 무리이기 때문에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나는 세션 5의 종합토론 좌장으로 나섰는데, 세바다의 한 활동가 분이 소중한 질문을 하셨다. “신경다양성이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세바다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세바다에도 갈등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멤버 변동을 겪기도 합니다. 이중공감문제(double empathy problem-자폐인의 장애는 의학적 결손이 아닌 신경전형인과의 소통 방식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가설)가 자폐인끼리 갈등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경다양성은 갈등의 완벽한 해결책이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성소수자 신경다양인, 가난한 신경다양인 등이 함께함을 인지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만 합니다.”

내가 앞서 말했듯이, 세바다와 신경다양성 운동은 갈등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해결할 수는 없다. 비장애인들, 신경전형인들이 서로 반목하다가도 친해지고, 다시 싸우기를 반복하면서 다양한 관계성을 만들어내듯이 신경다양인도 갈등을 겪고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오히려 당사자에게서 갈등을 ‘면제’하려는 움직임이 장애차별적(ableism)임을 알아야 한다. 신경다양인끼리의 공감에 갈등과 그 해결이 포함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연대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싸우고, 울고불고, 치열하게 토론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서로 웃고, 식사를 함께하고, 장애계 행사에 함께 나타나는 세바다와 estas는 진정으로 연대하고 있다. ‘제2회 신경다양성 포럼’은 신경다양인의 연대를 굳건하게 해준 계기가 됐다.

이제 이 글의 제목으로 돌아가보자. 세바다 내 갈등을 해결하기 전까지의 나는 “신경다양성이 새로운 연대가 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신경다양성은 새로운 연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행사가 그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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