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정신장애인이 고시원·쪽방 향하다 운 좋게 마련한 임대주택...거기에 대한 폄하가 적절한가?”
[르포] “정신장애인이 고시원·쪽방 향하다 운 좋게 마련한 임대주택...거기에 대한 폄하가 적절한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6.15 2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일종 의원 비판 기자회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진행
성일종 “임대주택 사는 사람들에서 정신질환자 많이 나온다...격리해야”
잊을 만하면 나오는 정신장애 비하·혐오 발언...당의 반성과 교육 시급해
성일종 발언, “헌법을 무시한 국가폭력이 도사리고 있어”
국가책임제는 결박이 아니라 생애주기별 대책과 복지정책 의미
끝까지 팔 흔들며 민중가요 부르는 여성에게서 인간 존엄 재확인해
정신장애 인권단체들이 15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성일종 의원의 정신장애 비하 발언 사과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 인권단체들이 15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성일종 의원의 정신장애 비하 발언 사과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정치인의 차별 발언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는 크고 높았다. 15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의 “임대주택에서 정신질환자들이 많이 산다”는 혐오 발언에 한바탕 싸움을 벼르듯이 모여들었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면서 50여 명의 대오가 갖춰졌다. 국민의힘 당사 앞에는 전경 50여 명이 출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앞서 지난 9일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국민의힘 ‘서울시당 6·1지방선거 당사자 대회 및 워크숍’에서 “임대주택에 못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정신질환자들이 많이 나온다”, “임대주택에 동네 주치의들이 돌며 문제시 격리해야”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정신장애 운동 진영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국민의힘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이날 기자회견을 막지는 못했다.

지난해 2월에는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이 문재인 당시 정부의 대북 원전 지원에 의혹을 제기하며 정부를 “집단적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발언을 했고 그때도 정신장애인 운동 진영이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나서서 당 차원의 장애인 인식 교육 및 인식 개선 가이드북 제작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혐오 발언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국민의힘 자체가 인권이나 장애 감수성에서 아예 관심을 두지 않고 있지 않나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날 기자회견도 지속적인 혐오 발언에 대한 국민의힘의 전면적 반성을 요구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비가 오려는 듯 날씨가 꾸물거렸다. 발언에 나선 권용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정신질환자들은 취업의 기회가 적고 복지의 기회도 적어 삶이 빈곤해지는 것을 어떻게 못사는 곳에 정신질환자가 많이 나온다고 할 수 있나”라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격리를 당해봤냐”고 질문을 던졌다.

“코끼리 주사를 맞고 폐쇄병동에 강제입원돼 약을 먹고 천장만 보며 잠자고 퇴원을 해서도 약만 먹고 멍한 침대 천장만 보다 하루가 끝나는, 젊은 나이에 하고 싶은 취업, 결혼도 못 하는 정신질환자가 수두룩하고 폐쇄병동에서 30년 넘게 생활하고 사회에 부적응해 다시 입·퇴원을 반복하는 정신질환자. 젊었던 30대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요양시설에서 아무 연고자도 없이 돌아가시는 정신질환자 분도 있습니다.”

정신장애 인권단체들이 15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성일종 의원의 정신장애 비하 발언 사과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 인권단체들이 15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성일종 의원의 정신장애 비하 발언 사과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권 소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정신질환자가 듣기만 해도 치를 떠는 격리를 시켜야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발언을 하며 대통령 선거 때 부르짖던 사회통합과 대비되는 행보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 의원의 직접적 사과와 서약서를 받고 해당 의원에 대한 징계를 내릴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정식 새날동대문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병원에 강제입원 당하면 거기서 나올 수 없어서 집에 전화를 한다”며 “원하는 걸 물어보면 담배, 초코파이, 일회용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 관리자는 캔커피의 반입을 막는다.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전 센터장은 “이는 일반 장애인의 삶과 너무 다르고 극단의 차이에 의해 인간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며 “정신장애인 특성을 이해하고 제도를 만들어도 부족한데 정치인이 정신장애인을 가둬야 하는 존재로 말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전했다.

김태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투쟁조직위 부위원장은 냅다 욕설부터 내뱉었다.

“사과할 때까지 쫓아가자. 사과받아야 마땅하다. 정신장애인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성일종 너 같은 XX 때문에 우리가 가난하게 사는 거다. 이 XXX아. 당장 나와서 사과해.”

황운성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이사장은 “보호받고 치료받지 못해 가난해지는데 가난해서 격리해야 한다는 말은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김도희 변호사는 “임대주택에 못사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정신질환자가 나온다. 문제 있는 사람들을 격리해야 한다. 이 단 세 문장에는 빈곤 아닌 빈자와 싸우는 정치인이 있고 임대주택 거주인과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있고 헌법을 무시한 국가폭력이 도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명백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임에도 국가인권위 진정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인권위에서 권고를 해도 소용없는 건 강제 수단이 없기 때문. 그러니 반성은 없고 반복만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신장애인을 사회의 주변인으로 내몰지 말고 사람으로, 같은 존재로 인정하라”고 주장했다.

변윤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국내 전체 가구 중 42.2%가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데 성 의원 관점에 따르면 국내 인구 절반이 못사는 사람이고 정신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 격리가 필요하다”며 “주거 공급과 가격 안정화를 하지 못해 생겨난 것이 임대주택인데 자신들의 성과에 스스로 침을 뱉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정신장애 인권단체들이 15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성일종 의원의 정신장애 비하 발언 사과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 인권단체들이 15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성일종 의원의 정신장애 비하 발언 사과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그는 “정신장애인은 최저임금법의 예외를 받아 한 달 내내 일해도 30만 원이 채 못 버는 사람들이 많다”며 “노동을 해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돈을 모으지 못하니 공동생활가정에 입소하거나 고시원, 쪽방을 향하다 운 좋게 마련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공공임대주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불평등과 납득하기 어려운 통계를 만든 것도 정치인들”이라며 “그럼에도 정신질환자의 격리, 임대주택 거주자에 대한 폄하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했다.

최경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정신장애인 비하 발언이 나올 때마다) 당사자 단체와 가족이 사과를 요구하면 국민의힘도 장애 인식 교육을 하겠다고 답변했다”며 “허나 해마다 비하 발언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장애 인식 교육을 진짜 했는지 묻고 싶고 교육자료를 보자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 인식 교육을 하지도 않고 그때그때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 활동가는 “국가책임제란 국가가 장애인을 결박해 격리·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지원하는 맞춤형 복지정책을 말한다”며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가족에게만 보호 책임을 지우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고 복지체계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일종 의원에게 책임을 물어 즉각 의원직에서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오후 1시 45분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발은 조금씩 굵어졌다.

참여자들은 준비해 온 우비를 입고 회견을 계속 진행했다. 그런데 기자회견 장소 바로 옆에서 보수 단체로 보이는 4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이준석 성 상납, 국민의힘 윤리위는 이준석을 제명하라’는 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쪽은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다른 한쪽은 보수의 정치적 상징인 당 대표의 제명을 요구하는 ‘엇갈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시위가 진행된 것이다. 당사자 단체는 엠프 소리를 더 크게 틀었다. 보수 진영 집회에서도 엠프 소리가 웅웅 울리고 있었다.

국민의힘 당사 앞 기자회견 맞은편에서 보수 성향의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국민의힘 당사 앞 기자회견 맞은편에서 보수 성향의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엠프에서는 장애해방가와 임을 향한 행진곡, 불나비가 연속으로 이어졌다. 오후 2시 10분, 비는 완전히 그쳤다.

권성혜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정신질환은 타의에 의해 이름붙여진 병명이고 개인의 경험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라며 “개인적 경험이 왜 다른 사람의 편견의 잣대가 돼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개인의 행복을 위한 길을 가는데 임대주택이 함께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편견은 낄 틈은 없다”며 “편견의 구성을 보면 편견이 편견을 낳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엠프에서 노동가가 울려퍼졌다. 회견 장소 우측에서는 여전히 국민의힘 쇄신을 요구하는 보수 성향의 시민들이 내는 마이크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당사 앞을 지키던 전경들이 경력 교대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구석진 곳에서 신석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상임대표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성일종 의원실에서 온 실무자와 대화를 하면서 고성을 내지른 것이다. 신 상임대표는 “사과할 의향이 없는데 왜 왔어요. 온 이유가 뭐예요? 입장 얘기하려면 면담부터 잡으세요. (성 의원이) 전화하라고 하세요”라고 몰아세웠다.

신석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상임대표(오른쪽)가 기자회견장을 찾아온 성일종 의원실 실무자에게 항의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신석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상임대표(오른쪽)가 기자회견장을 찾아온 성일종 의원실 실무자에게 항의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실무자는 “항의서를 준다고 해서 제가 가지러 왔다. 제가 가서 보고를 드려야 하지 않나”라며 “의원님 사과 공식으로 나갈 건데 나한테 사과하라고 하니 난감하다. 저는 정치인 아닌 공무원입니다”라고 난처한 입장을 내놓았다. 신 상임대표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가서 말해요. 여기 와서 사과하라고. 전화해서 얘기하라고요.”

실무자는 “뭔가를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주눅든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엠프에서 민중가요가 흘러나왔다. 오후 2시 35분의 당사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다시 울렸다. 비를 맞으며 자리를 지키던 당사자들이, 활동가들이, 연대 단체 구성원들이 팔을 힘차게 흔들고 있었다.

그때, 키 작은 여성이 기자의 눈을 끌었다. 홀로 힘차게 장애해방가에 맞춰 팔을 흔드는 그 모습이, 왜 그토록 기자는 눈물겨웠던 것일까. 정신장애인이 인간이라는, 이 존엄의 테제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권력에 대한 분노와 저, 여리고 작으나 우주보다 귀한 한 여성의 팔 흔드는 정치적 퍼포먼스가 서로 충돌하고 교차하면서 터져 나오는 희망에 대한 소망. 그것이 기자로 하여금 울컥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여리고 약한 것이 끝내 이긴다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그 어떤 폭력도 인간 자체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오래된 믿음을 기자는 떠올렸던 것일까.

정신장애 인권단체들이 15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성일종 의원의 정신장애 비하 발언 사과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 인권단체들이 15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성일종 의원의 정신장애 비하 발언 사과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2시 45분. 신 상임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성일종 의원실에서 왔는데 저희가 성명서를 전달했다”며 “성 의원이 이번 주 금요일까지 면담 일정 잡고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일인 시위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집회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회견은 끝났다. 기자는 문득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가 떠올랐다.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 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 누군가는 사회적 비난으로 상처 입고 쓰러진 정신장애인의 어깨를 일으켜 세우고 함께 노래 부르고, 이야기하고, 위로하고, 한 길을 걸어가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거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 눈물을 누군가는 기억해줄 것임을. 인간이 인간이기에 가지는 존엄을, 누군가는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시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임을 기자는 안다. 정신장애인을 배제하고 격리하던 야만의 구(舊)시대는 이제, 끝났다. 아니, 끝나야 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