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미 정신질환협회 "총기 난사 사건을 정신질환과 연관시키려는 건 거짓되고 해로운 시도"
[이관형 기자의 변론] 미 정신질환협회 "총기 난사 사건을 정신질환과 연관시키려는 건 거짓되고 해로운 시도"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2.06.16 19: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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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난사 사건 생길 때마다 미 의회 총기규제 법 발의...공화당 반대로 늘 무산
미 민주당, 정신질환자와 범죄전력자에 총기 구매 금지하는 '붉은깃발법' 발의
한국 정신질환자 28개 법령서 자격 제한...당사자에게 칼과 운전대 빼앗는 논리
정치인의 혐오발언에 근거해 만든 법이 우리 삶에 적용돼...저항해야

지난 2022년 5월 24일, 텍사스주 유밸디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19명의 어린이와 2명의 교사가 희생되었습니다. 범인은 ‘샐버도어 롤란도 라모스’라는 18세의 남성으로 범행 전부터 이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범행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SNS 플랫폼인 유보(동영상 스트리밍 대화창)를 통해 10대 소녀들에 대한 살인 예고와 성폭행 발언을 일삼았습니다. 심지어 영상을 통해 자신이 구입했던 총과 구매 영수증까지 공개했습니다.

그의 SNS 계정은 지인들의 신고로 중지됐지만, 정작 당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그는 집에서 자신의 할머니를 총으로 쏜 뒤, 방탄복과 소총으로 무장한 채 초등학교로 가서 이 같은 참사를 저질렀습니다.

범인 라모스의 지인들은 그가 학창시절 말을 더듬고 발음도 좋지 않아 '왕따'를 당했었다고 말했습니다. 반 아이들은 짧은 머리의 라모스를 가리켜 펠론(스페인어로 대머리)이라고 놀렸으며, 라모스가 SNS에 올린 셀카 사진에는 ‘게이’라는 표현과 여러 사람들의 욕설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학교를 그만 둔 라모스는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온라인상에서 친구를 사귀려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의 지인의 말에 따르면 “유밸디 초등학교 총격사건의 범인이 라모스라는 걸 TV를 통해 알았다. 그가 사람을 해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라모스는 정신적 지원이 필요했고, 가족과 더 가까워야 했고, 사랑이 필요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AFP=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소도시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샐버도어 라모스(18)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려놓은 사진. 총기를 난사해 어린이 19명 등 21명을 살해한 고등학생 라모스는 범행 30분 전 자신의 할머니와 초등학교에 총을 쏘겠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소셜미디어 캡처. 판매 및 DB 금지] 2022.5.26
(AFP=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소도시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샐버도어 라모스(18)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려놓은 사진. 총기를 난사해 어린이 19명 등 21명을 살해한 고등학생 라모스는 범행 30분 전 자신의 할머니와 초등학교에 총을 쏘겠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소셜미디어 캡처. 판매 및 DB 금지] 2022.5.26

이 사건은 미국 내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죠.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미국 하원에서는 총기규제 강화를 위해 ‘아이들을 보호하는 법(Protecting Our Kids Acts)’라는 법안을 찬성 223명, 반대 204명으로 가결시켰습니다. 이 법안에 따르면 반자동 소총을 구매할 수 있는 연령을 기존 18세에서 21세로 상향하고, 15발 이상의 탄알이 들어있는 탄창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았죠.

하지만 해외 언론은 이 법은 상원에서 공화당에 의해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습니다.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50석씩 점유한 상태인데, 이 법안이 통과되려면 60표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주당과 달리 공화당에서 이 법을 지지하는 의원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워싱턴DC 로이터=연합뉴스) 한국과 일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79)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텍사스주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이날 한 18세 남성이 텍사스주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 총기를 난사해 현재까지 학생 18명과 교사 3명이 사망했다. 2022.5.25
(워싱턴DC 로이터=연합뉴스) 한국과 일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79)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텍사스주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이날 한 18세 남성이 텍사스주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 총기를 난사해 현재까지 학생 18명과 교사 3명이 사망했다. 2022.5.25

그러자 민주당 출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SNS를 통해 ‘붉은 깃발법(Red flag laws)’의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붉은 깃발법’은 정신질환자나 범죄 전력이 있는 개인이 총기를 구매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법안은 이미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야당인 공화당도 동의할 만한 묘수로서 이 법안을 내세웠습니다. 공화당으로서도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이 법안까지 반대한다면 여론의 저항에 부딪힐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범인 라모스에게 정신질환이 있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법안을 통과시켜 명분을 얻어야 한다는 민주당과 조 바이든 대통령, 총기 규제를 최대한 막아 실리를 지켜야 하는 공화당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붉은 깃발법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입니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민주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총기 난사 사건의 예방을 위해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성과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화당도 실질적인 총기 규제를 최소화함으로서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전통적 지지층의 이익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범인 라모스에게 정신질환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공화당은 서로의 명분과 실리를 위해 보여주기식 법안을 내세웠습니다. 정신질환자들이 총을 소유해 미국 사회가 위험에 처할 거라는 미국인들의 막연한 편견과 인식이 정치권을 움직인 것이죠. 하지만, 정신질환자들에게 총을 소유하지 못하게 막는다고 미국 사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사라질까요?

마치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들에게 칼과 운전대를 빼앗는 논리와 같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들은 28개 법령에 따라 직업과 자격, 면허를 취득하는 데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칼을 쥐어야 하는 의사와 수의사, 사람들의 먹거리를 만드는 영양사와 조리사, 그리고 약을 처방하는 약사와 가위를 다루는 미용사까지.

출처 : 국가인권위원회
정신질환자 자격제한 관련 법령 [인권위 제공]

수만 개에 이르는 많은 직업들 중에 왜 유독 이 직업들만 제한을 받는 걸까요? 무엇이 두렵고 어떤 모습이 걱정되는 걸까요? 이 법안을 만든 정치인들은 어떤 상상으로 이 직업들에 대한 제한을 둔 것인가요? 우리가 추측하는 이유와 일치하다면, 적어도 활동지원 인력과 사회복지사까지 제한을 둘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요? 봉사와 사명감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돕고 싶어 하는 당사자들의 꿈과 희망마저 칼과 가위를 든 위험한 모습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의 발언을 통해, 정치권에서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수준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임대주택에서 정신질환자가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수준의 발언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었습니다.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미국 텍사스 주의 주지사 그레그 아보트(Greg Abbott)는 이번 사건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습니다.

(오스틴 AP=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 초등학교 총격 참사 이튿날인 25일(현지시간) 오스틴의 텍사스 주지사 관저 앞에서 총기 반대 단체인 '맘스 디맨드 액션'(Moms Demand Action) 주최 시위에 참석한 세 살 아이가 종이 피켓을 덮은 채 엎드려 있다. 피켓에는 "언제 우리 아이들이 당신의 총보다 더 중요해질까요?"라고 쓰여 있다. 전날 텍사스주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18세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에서 또 다시 총기 규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오스틴 아메리칸-스테이츠먼 제공] 2022.5.26
(오스틴 AP=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 초등학교 총격 참사 이튿날인 25일(현지시간) 오스틴의 텍사스 주지사 관저 앞에서 총기 반대 단체인 '맘스 디맨드 액션'(Moms Demand Action) 주최 시위에 참석한 세 살 아이가 종이 피켓을 덮은 채 엎드려 있다. 피켓에는 "언제 우리 아이들이 당신의 총보다 더 중요해질까요?"라고 쓰여 있다. 전날 텍사스주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18세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에서 또 다시 총기 규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오스틴 아메리칸-스테이츠먼 제공] 2022.5.26

“우리는 국가로서, 사회로서, 정신 건강을 더 잘 관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쏘는 사람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습니다.”

(“We, as a state, we, as a society, need to do a better job with mental health, Anybody who shoots somebody else has a mental health challenge, period.”)

이처럼 그레그 아보트 주지사는 총기 난사의 원인으로 정신질환을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텍사스 주와 아보트 주지사는 텍사스 주민들의 건강관리에 대한 프로그램을 거부해 왔습니다. 텍사스 주를 포함한 미국의 많은 주 의회는 미국 사회보장법 제 29항에 근거하여 사회 소외 계층과 저소득 가정도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메디케이드(Medicaid) 제도의 확대를 거부해 왔습니다.

메디케이드 제도는 민감 보험료 보조금조차 받지 못하여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이기도 합니다. 이 제도가 확대되면, 높은 비용의 부담 없이 정신과 진료와 정신과 약을 복용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국가책임제와 유사한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텍사스 주지사와 정치인들이 총기 난사와 같은 사회의 끔찍한 범죄의 원인으로 정신장애인들을 지목하면서도, 정작 저소득층과 소외 계층의 정신 건강을 위한 서비스와 치료의 기회를 막아온 것입니다.

그러자 그레그 아보트 주지사와 정치인들의 인식과 편견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UCLA(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대학교)의 비비안 버트(Vivien Burt) 정신의학과 명예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 컬럼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투시자가 아니라 임상의입니다. 우리는 경청하고, 복잡한 장애를 진단하고, 자타해의 위험성을 평가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훈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의 미래 행동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진단은 예언이 아닙니다. 자타해의 위험 평가는 확률에 대한 것이지만, 그 확률이 특정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 날짜에 무엇을 할 것인지 알려주는 건 아닙니다.

정신질환을 겪는 십대와 청소년들은 대부분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잠재적으로 폭력적인 범죄자가 될 거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구금할 수는 없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우리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십대와 청년들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건강 전문가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며,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총기 사건 사고를 해결해 준다고 믿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namikitsap.org
namikitsap.org

한편, 전국정신질환연합(NAMI, National Alliance on Mental Illiness)와 미국 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ition)을 포함한 60여개의 단체들은 총기 난사 사건을 정신질환과 연관 시키려는 것은 거짓되고 해로운 시도라면서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정신질환을 총기 난사 사건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폭력의 가해자보다 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영속화하는 행위이죠. 사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에 의한 총기 사건은 전체 총기 사건에 비하면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미국 총기 사건은 공중 보건의 위기이며, 총격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공포는 미국인들의 정신건강을 크게 악화시킵니다. 미국 성인의 대다수는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된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경험합니다. 현재 미국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비추어 볼 때도, 총격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공화당 출신 의원들은 청문회에서 총기 규제보다 학교 보안 강화야말로 해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학교에 배치된 무장 경비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잘 훈련되고 무장한 자원봉사자 부대를 창설하자는 주장까지 나왔죠.

미국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넬(Mitch McConnell)도 총기 난사 사건의 주된 두 가지 원인으로 정신질환과 학교 안전 문제를 꼽았습니다. 정신질환자들의 총기 사용을 금지하고, 학교에 무장 인력을 배치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본 것이죠. 텍사스 주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Ted Cruz)도 학교에 더 많은 무장 경찰이 필요하다며 “준법 시민의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이는 범죄 예방의 효과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미국 일부 정치인들의 편견과 욕심으로 인해 또 다른 총기 난사 사고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사고의 원흉이자, 예방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될 것입니다. 정작 매드케이드 제도 확대나 총기 규제 강화의 중요성은 간과된 채 말이죠.

정치인은 국가의 법과 제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치인의 인식과 수준에 따라 법과 제도가 바뀌고,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죠. 얼마 전 있었던 한 정치인의 정신장애인 비하 발언은 단순히 당사자들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의 편협한 인식과 낮은 수준으로 만든 법들이 실제 우리들의 삶에 적용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치권을 향한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저항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정치인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랍니다.

(유밸디 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소도시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 앞 교명 표지판 주변에 총기난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과 양초들이 놓여 있다. 전날 고등학생 샐버도어 라모스(18)의 무차별 총격으로 이 학교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숨졌고 라모스는 사살됐다. 2022.5.26
(유밸디 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소도시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 앞 교명 표지판 주변에 총기난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과 양초들이 놓여 있다. 전날 고등학생 샐버도어 라모스(18)의 무차별 총격으로 이 학교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숨졌고 라모스는 사살됐다. 2022.5.26

참고 기사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22/06/03/uvalde-mental-health-professionals-are-not-clairvoyant-abbott/

https://www.facingsouth.org/2022/06/will-politicians-who-blame-mass-shootings-mental-illness-expand-medic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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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2022-06-17 12:54:26
발빠른 해외소식 감사합니다.